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오랫동안 대학의 연구실에서 근무를 하면서 연구과제 공모, 이런 걸 수행하다보니 정형화된 결과 보고서 작성하는 것 등의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지금 회사에서 사업결과보고서 쓰는 것은 조금 많이 수월하게 하고 있다. 그런면에서도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참고로 삼는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편이다.
관련한 논문이나 국가의 정책보고서 등을 참고해서 그 시기에 관심이 모아진 단어를 선별해서 사용하거나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 쓰기도 한다.
우리 회사 직장 상사는 문서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내가 기안하는 문서에서 어떤 내용적인 보완이나 수정을 요청하는 일은 드문 편이다. 하지만 그분은 기본적으로 수정을 많이 한다.
붙임으로 안내문이 다 나가는 거라서 공문에는 '00하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도의 문장 만 있을 때에도 수정을 한다. 그런데 수정을 할 때면 언제나 기안자를 불러서 옆에 세워둔다. 중요한 문맥상의 오류라던가, 협의가 필요한 내용의 수정일 때는 모르겠는데 사소한 단어 한 두개 넣거나 빼는 경우, 오타가 있을 때에도 일일이 불러서 옆에 세워두고 핀잔을 주니 어떨 때는 그러려니 하다가,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이런 걸로 윗 사람 노릇을 해 보겠다는 건가, 욱~ 하는 화가 밀려 올라오기도 한다.
하물며 주기적으로 나가는 공문인데 지난 번에 자신이 수정해서 내보낸대로 기안을 했는데 다시 불러서 왜 이렇게 쓰는 거냐며, 이런 것도 꼭 내가 일일이 봐 줘야 하냐, 하며 다시 수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그분과 다른 사무실에 앉아 있어서 불러서 수정을 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대신 오늘은 전화가 왔다.
"00씨, 진짜 자기는 다 잘 하는데 꼭 이런 실수가 있더라. 오타 없이는 안되는 거냐?"
"어머나, 죄송합니다."
"그 죄송하다는 소리 좀 안 듣고 싶다. 알겠나?"
"네. 바로 수정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아니, 됐고. 내가 여기서 고치면 되고. 내가 진짜 결재를 하는 사람인지 오타 수정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네 고맙습니다.:
"넌 진짜 5% 부족한 거 알지?"
"네 ㅎㅎㅎ 그런데요, 소장님. 저는 진짜 제가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요즘 그렇게 오타도 종종 나고 구멍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게 뭔 소리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서 너무 좋아요 ㅎㅎㅎ"
"(잠시 침묵) 알았다. 아무튼 좋으면 됐다."
뚝! (바로 전화 끊음)
가끔씩 너무 심하게 지적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 뭐 윗 사람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안을 작성할 때 오타를 내면 안되는 것고, 오타를 넘어서서 내용은 더 충실해야 하는 거고.
보완할 점이 있다면 그걸 안내해 주는 것이 또 윗 사람의 역할이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의 넘치는 부분이나 오가는 말속에서 맘에 걸리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이야기의 본질과 핵심을 생각하면 수긍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내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것을 알려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면 더 이상 갈등이 아니게 된다.
상사가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싣는다고 해서 나도 감정으로 응수하지 말자.
그냥 팩트에 집중해서 잘못한 것은 쿨하게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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