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회사생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대화하기

약간의 거리 2021. 3. 8. 13:04

아침에 민원으로 유명한 보호자가 방문하셨다.

이것은 어찌보면 '복지'가 가지고 있는 이면성 같은 것의 문제일 수도 있다.

뉴스에서는 잊힐만하면 한 번씩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는 사연들이 보도된다. 그들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경우도 있고, 어떤 복지 혜택을 자신이 받을 수 있는지 정보를 갖지 못한 경우도 있다. 반면 지역의 복지 서비스를 너무나 잘 알아서 하루 종일 기관 방문을 하는 복지 쇼퍼들도 있다.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딜레마에 빠진다.

- 계속 지원하는 게 맞아?

그러면서

- 이제 그만 지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갈등을 겪는다. 나도 그렇다.

지난 해에 어떤 보호자는 '나는 10년 전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그러니까 계속 너희가 나를 도와야 한다.' 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가난하면 당당하면 안되는 것인가?

10년 전에 가난했던 사람이 10년 후인 지금에도 여전히 가난한 상황이 이해가 안되나?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이제 없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만큼 부는 대물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결국 가난도 대물림 된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가난했던 부모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다고 한들 부유해 질 수가 있겠는가. 다만 아이가 크면서 그만큼 돌봄에 필요한 비용은 늘어날 것이다.

 

민원으로 유명한 그 보호자님의 경우도 그렇다.

그분이 민원을 제기하는 이유는 지원이 끊길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한시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계속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기관의 예산 구조상 그런 경우도 있고(어쩌면 이런 경우가 가장 흔할 것이다), 지원 사업이 한시적인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지원 당시에 그 특징을 명확히 안내하면 지원이 종료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더라도 수긍한다. 불만을 가지고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처음에 이 설명이 명확하지 않았거나 보호자가 특성상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자기의 요구만을 반복하는 경우이다.

 

우리 기관에서 겪는 민원의 어려움은 이것이 우리 기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런 분들은 관련된 다른 기관들에도 민원을 제기하면서 안내 받은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고, 자신이 이해한 대로 다른 기관에 전달한다. 그래서 화가 난 타 기관 직원이 다시 우리 기관에 민원을 제기한다. 기관 직원들끼리 불편해 지면 정말 피곤하다.

 

그날 아침에도 보호자께서 약 20분 가량의 면담 후 돌아가시고 난 후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전화가 와서 안내 똑바로 하라는 등 엄청나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연락해서 주민센터 직원과 통화한 내용을 전달해 주었는데 내가 보호자와 나눈 이야기랑은 정반대되는 것들도 있었다.

 

- 그랬어? 내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잖아.

- 그러니까. 내가 그 선생님이 그렇게 말할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보호자한테 들었다면서 선생님 이름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는 거야. 내가 확인해 보겠다고 하는데도 안 끊고 계속 말하면서 안내 똑바로 하라고 뭐라고 하더라고.

- 암튼 뭐, 혹시 또 통화할 일 있으면 안 그랬다고 확인했다고 말해줘.

 

듣고 마무리를 하려고 했지만 전화를 받은 직원도 억울함이 컸던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거다. 그래서 결국

 

- 어떻게 할까? 내가 그 주민센터 직원이랑 전화를 해 보면 좋겠어?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오해를 받는 것 때문에 자기가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듯이.

 

 


 

'나는 우선 000 보호자와 관련해서 전화를 주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방금 막 만나고 헤어졌어요.'로 말문을 연다.

이미 다른 직원과 한 차례 통화를 한 담당자는 전해 들은 것 보다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방금 막 만나고 헤어졌다는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비춘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화를 줘서 -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시계를 보며 '업무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나에게 들은 내용이라고 보호자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1. 틀을 재구성한다.

 상대가 들은 민원의 내용을 요약해 주면서, 시간 순서를 재배치 한다. 우선 보호자가 주민센터에 전화를 건 시간은 나를 만나기 전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 준다. 그러자 담당자는 시간을 다시 수정한다. 9시 30분쯤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내게도 그 시간에 전화가 왔었고, 그 내용은 곧 방문하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10분쯤 후에 방문하셨고,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민원의 내용은 내가 말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그분이 그런 처리를 원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답변을 드렸다.

같은 내용의 요구를 나와 주민센터에 동시에 하신 것 같은데, 주민센터에 말씀하실 때에는 나에게 들었다고 하셨나보다.

 

2.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준다.

약간 머쓱해진 상대는 그분이 자주 전화를 하거나 방문하면서 요구하는 내용들과 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기가 알아낸 정보들은 이야기한다. 나도 몇번의 면담을 통해서 보호자에게 들은 현재의 경제적인 상황과 주요 지출처 등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주민센터 담당자는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이곳 저곳 알아봐서 재차 확인까지 진행을 한 모양이다. 나는 '그걸 언제 다 알아보셨냐,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알아보시는 분은 본 적이 없다'며 그의 노력을 격려해 주었다.

그는 이 지원을 받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정보가 너무 적고 우리 기관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을 하는지가 헷깔린다는 이야기로 말을 돌린다.

 

3. 정보를 제공한다.

나는 최대한 쉽게 그분이 헷깔려하는 부분은 중심으로 요약해서 설명을 해 준다. 그리고 최종 선정에 대해서는 내가 그 회의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추가적으로 내가 가진 전문성에 기초해서 민원인이 가지고 있는 생리적 취약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상대는 '나도 그분이 30% 정도는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다. 나는 다시 민원인이 겪고 있을 불안감에 대해서 안내하고, 그걸 없애기 위해서 그분의 취약성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4. 신뢰를 확인한다.

끝으로 이로 인해 지역 내 많은 기관 담당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우리 기관에 항의 전화가 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상대 기관에 떠넘기기식, 혹은 담당자가 곤란해 질 수 있는 방식의 응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 신뢰를 더 높이기 위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 바로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듯이

라고 말이다.

 


 

사실 그 유명한 민원인 보호자께서는 내게는 민원을 제기하신 적이 없다. 일단 나는 지원을 시작하는 시점에 면담을 진행하면서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고 언제까지 지원이 가능한지 한계를 알려준다. 그러면 일단 지원을 받게 된 것에 만족한 대상자는 자신이 계속 지원을 받아야하는 사람임을 강조하는 여건들을 하소연하듯이 말씀하신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마무리를 한다. 중간에 한 두번 잘 지내고 계신지, 그리고 앞으로 지원이 얼마가 남았는지를 안내한다. 이런 과정을 두 번 정도 하고, 지원이 종료되기 2-3주 전쯤에 한 번 더 고지를 한다.

 

정확한 안내를 통해 전체적인 구성을 알려주고, 상대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공감해 들어주고,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있다면 아는 부분까지 최대한 제공해 주는 방법으로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업무 처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