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많은 부분에서 그걸 드러내왔지만 여지껏 그것을 콤플렉스라는 단어로 규정짓지 않았는데
지금 방금 막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콤플렉스 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어제 나는 목소리를 기부하는 한 단체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오디션을 봤는데
정말이지 내 기대하고는 180도 달리 1차에서 똑!하고 떨어져버렸다.
다시 응시할 수 있다는 안내를 이미 받았지만 나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시험장 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어쩌면 이런 결과를 알고 있었고, 어쩌면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슬퍼서 죽지는 않아." 라고 웅얼 거렸다.
그래서 알았다.
내가 지금 슬프다는 거.
나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고 그래서 슬프다는 거.
목소리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또 그러지 못했다는 거.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 응시하지 않고 나온 건
그래도 또 떨어질까봐 겁이 났고,
다시 하면 붙었을거라는 자기 위안을 남기고 싶었고,
그래서였다는 걸 사실은 너도 알고 있지, 하고 말이다.
엄마가 이야기해주는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얄밉게 말하는 타입이었다. 엄마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고, 아마 그 당시의 다른 어른들도 우리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만 그 얄미움은 분명이 내 목소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고 생각했다(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그렇게 추측해왔다).
나는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에 높은 톤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마치 어린 아이가 말하는 것 같아서 서른 살이 넘을 때까지도 집에 걸려온 홍보전화에 유치원생? 초등학생? 하면서 '어른 안계시니?'하는 질문을 들었고, 중학생 같은 남자애가 폰팅을 하자고 하기도 했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 갔던 집단상담에서 리더가 "왜 그렇게 어린애 처럼 말하지?"하고 말했을 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냥 제 목소리가 원래 이런데요.."라고 겨우 말했을 때 그가 그렇지 않다,며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직접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로 인한 좌절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성당에서 전례를 하는 사람을 뽑았고, 우리는 모두 마이크 테스트를 했는데 늘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듣고 살았던데다가 가장 오랫동안 우리 성당을 잘 나간 사람이라서 당연히 뽑힐 거라고 생각한 그 테스트에서 나는 떨어졌다. 그리고 성당에 온지 얼마 안된 예쁘장한 다른 여자아이가 뽑혔는데, 나는 그 아이가 예쁘고 털털한 성격으로 호감형이라서 그렇게 된 거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그때부터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때 과대표가 되어 학술회의를 준비하던 때 무대 설치를 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는 순간,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에 심한 화울링까지 울려서 모두가 귀를 막았드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이크 볼륨에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때는 나의 가늘고 높은 톤의 목소리 때문이라고 아주 철썩 같이 믿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런 내가 어떻게 방송리포터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에도 이 콤플렉스는 극복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방송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서 나는 종종 방송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나 관련된 자원 봉사 같은 것을 찾아다녔다. 지속적인 자원봉사를 찾다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도서녹음을 하려고 했는데 해당 교육도 들어야 하고 해서 직장을 다니면서는 시도도 해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여지껏 포기를 못하고 해마다 언제 교육을 하는지, 언제 모집을 하는지 확인하고 있다.
그러다가 최근에 특별한 교육을 이수하지 않아도 오디션을 통해 할 수 있는 목소리 기부행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주저없이 신청을 했고, 한 달여를 기다려 오디션을 참석하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이 직접 목소리를 듣고 피드백을 주는데 역시나 그분의 말씀은 톤이 안정되지 않았고, 너무 밝다는 것이다. 밤에 잠들기 전에도 들을 수 있는데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 잠이 깰꺼라고 했다.
결론은 그래서 나는 1차에서 똑! 떨어져 버린 것이다. 사실 방송아카데미도 다녔고, 리포터도 2년을 한 사람인데...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데 여지없이 와장창.
사람이 슬프다고 죽지는 않아.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내가 지금 얼마나 슬픈지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목소리 기부에 매달리나! 엄청나게 많은 다른 활동으로도 자원봉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들어간 한 가게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손님은 목소리가 밝아서 다른 사람까지 기분을 좋아지게 하네요." 하고 말씀하신다.
방금 떨어진 오디션과 같은 피드백 다른 반응.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이 목소리가 오랜 세월동안 나를 묶어 둔 콤플렉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더이상 쓸데없이 목소리 오디션 같은 것은 보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단지 나의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슬픔은 아직 가시지가 않는다.
슬프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세상 만사가 귀찮아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귀차니즘은 우울의 다른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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