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거리조절

약간의 거리 2019. 5. 11. 15:00

언젠가 어떤 사람이 엄청 힘들어하는 걸 보다 못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여친과 헤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몹시 당황했던 적이 있다.
사실 묻기전에 나는 알고 있었고 모른척 했던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에 서툰 나를 알기에 나의 무의식이 애써 외면하라고 했던 것을 덜컥 확인하고선 뭐라 할말을 찾지 못해 어쩌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을 잘 모른다. 어쩌면 나 자신을 위로하는 법도 잘 모른다. 그래서 그런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는 데 그때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게 거리조절이다.


누군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리도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약간 높은 냉정함과 남의 도움을 청하지 않을 정도의 유능함이다.

누군가에게 한 번 물어보면 5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을 며칠씩 해야 하기도 하고, '넌 내가 이런 하소연을 할 때 내편을 들지 않아서 좋아.'하는 욕인지 칭찬인지 알수 없는 소리를 들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이것도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다. 예전에 노희경 작가가 한 말처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 냉정해 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일거다.

때때로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 성큼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라서 이번에는 아예 셔터를 내리고 그 뒤로 숨어 버리기도 한다. 사소한 상대의 피드백을 대단한 거절의 메시지로 알아듣고 침울해지기도 한다. 회복탄력성이 높다면 그렇게 물러섰다가도 금방 조금 약하게 뛰어보지, 하면서 도전해 보겠지만 한번 닫힌 문을 영원히 열지 못한고 끝내며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가끔은 책을 사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 주먹하나 들어갈 정도의 간격을 유지해도 괜찮은 관계는 어느 범위까지 인지, 직장 동료들과는 몇 센티미미터의 거리가 필요한건지. 목차를 읽어보고 뭔가 그럴싸해보며 구매를 하지만 책을 읽어봐도 명쾌한 답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건 책으로도 배울수가 없다. 자로 재어가며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닌 이상 멀어지고 가까워지고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그 거리의 폭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고,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거리가 필요한 터인데,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알려줄 수도 없거니와 알려준다해도 한번에 그 간격을 맞추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멈춰있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다다가면, '그러다가 부딪힌다.'하고 말해주면서 그 자리에 서 있고, 멀리가더라도 그냥 서 있고, 그러다가 돌아와보면 또 역시나 서 있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내게 안전기지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 그런데 멀어져도 조금도 거리를 좁혀와 주지 않는 게 서운해서 거기 있는 줄 알면서도 돌아가지 않기도 한다.


어제 나는 또 두 번의 거리조절에 실패한 것 같다. 아마도 그런것 같다. ...

첫 번째 실패한 거리조절에서 나는 화들짝 놀라 여지없이 십리밖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정중하고 사무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번 것도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보다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표현을 알지 못하겠다.


두 번째 실패한 거리조절에서는 조절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다. 조절해야 돼. 조금은 더 물러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나는 가만히 서 있는 걸 선택했다. 그리고 후회한다.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적절한 거리가 어디 쯤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 자리를 찾아가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 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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