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말 시키기 어려운 사람

약간의 거리 2019. 10. 30. 10:08

말시키기 어려운 사람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보는 나의 이미지는 그렇다.

대학 때 단짝 친구들이 있어 셋이 항상 붙어 다녔는데

한 명은 아주 도도해 보이지만 사실은 허당인, 가까이서 몇 번만 보면 모두에 그 허당끼를 들켜버리는 아이.

다른 한 명은 부드럽고 다정하고 잘 웃는 누구라도 얼른 다가가서 말 걸고 친해지고 싶은 아이

 

어느 날 이 다정한 아이가 나에게

- 애들이 자꾸 너에 대해서 물어 본다.

하고 이야기를 했다.

- 왜 직접 묻지 않고?

- 너한테는 말을 못 걸겠대

- 어째서?

- 몰라.

 

그 후로도 직접적으로 말을 걸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별로 없지만 - 사실 대 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 나의 대답이 차갑게 들린다거나, 쌀쌀맞다거나, 냉정하게 말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처럼 편 들어주지 않는다거나 등등의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남들이 말 걸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여기 회사에서 나는 종종 재단 경영지원실에 있는 직원들의 전화를 받곤 한다.

우리 센터 누군가의 업무 처리가 안 되어 있으니 해달라고 말을 전해 달라거나,

누군가의 어떤 일처리가 잘못 되었는데 확인을 해 달라거나 하는

사실은 내 일이 아닌 건데 나보고 좀 알아봐 달라는 거다.

 

우리 센터는 건물 2개를 사용하고 있고, 본관 건물에는 10여명의 사람이 한 사무실에 있고,

나는 혼자서 다른 건물 2층에 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센터 내 누군가의 어떤 것을 확인하려면, 한 층을 내려가서 옆 건물에 가야만 알 수 있어서, 좀더 멀리 떨어진 건물에 근무하는 그들보다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빼고는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있는 거다.

 

그들의 부탁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왜 같은 사무실의 옆자리 사람에게 요청해도 될 것은 굳이 나에게 연락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생각의 끄트머리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도 나한테 말하는 게 제일 편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나는 분명 말걸기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이 회사에서 부탁하기 쉬운 사람이 된 것인가!

 

재밌는 건, 그들이 해야 하는 말은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 그래서 자기들이 직접 하면 뭔가 관계가 조금은 불편해지는 말일 때가 많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면, 나는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사실 내 문제 일 때에도 별로 상관이 없기는 하다- 그게 그닥 불편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또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할 때 전달하는 나와 듣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제3자의 마법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주변의 오래된 사람들은 더이상 나의 직설적인 말투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걸 부러워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런 게 너무 웃기다며 깔깔거리기까지 한다.

 

내가 변한건가?

하고 순간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 주변 사람들이 더 성숙되었나 보다.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력발산 실수투성이  (0) 2020.04.22
드라마 속 여주인공  (0) 2020.01.19
나에게 자유를 준다  (0) 2019.06.17
슬퍼서 죽지는 않아  (0) 2019.06.07
거리조절  (0) 2019.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