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미안하다는 말

약간의 거리 2018. 9. 26. 23:31

나는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한때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걸 자랑으로 살았다. 지금은 퍽이나 부끄러운 고백인데 그때는 그게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어느 날 오래된 친구가 독립을 하였다며 시간될때 놀러오라했다.

'시간될 때', '언제 한번'...

이런 말은 진짜 약속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정말로 나를 만나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약속들 중 하나라 생각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집에서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러다보니 그냥 시간이 흘렀는데 1년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친구는 다시 본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때 집에 한번도 오지않아 자신이 얼마나 서운했는지를 만취가 되어서야 토로했다. '정말로 놀러오기를 기다렸구나!'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겨우 적응한 화법해석이 잘못되었다는게 좀 억울하기도 하고 나 같은 부류였나하며 미안하기도 했다.

 

다시 몇년이 흘러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았고 때문에 이번 명절 가족 여행에서 자기만 빠져 혼자 집순이가 되었다며 연휴 중 언제라도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도 날짜도 시간도 없는 '너희가 시간 될 때'라는 넘나 애매한 초대?

뭔가 시간이 없는 것 같기도하고 귀찮은 것 같기도하고, 지난 미안함이 새삼 떠오르기도 하고 아파서 명절은 혼자 보내야 하는게 딱하기도 하고...어느 누구하나 딱부러지게 날짜도 정하지 않으니 이러다가는 여차하면 또 흐지부지 될판이다.

-뭐 나 혼자라도 가서놀면 돼지!

하는 맘으로 요일을 정해 단톡방에 올렸는데 역시나 호응이 없다. 근데 맘을 정하고 나니 움직이는 건 의외로 쉬웠다. 그래서 저녁즈음 보자해 놓고는 일찍가서 먼저 둘이 놀고 있어야겠다,하는 맘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나 지금 00이 집으로 출발.

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간단한 먹거릴 사 가니 친구는 '난 너희들 아무도 안올줄 알았다'한다. 어쨌든 무려 7시간동안 긴 수다후 돌아오는데 맘이 좋았다.

몇년만에 사과를 제대로 한 느낌이랄까. 아~~ 기특하다.

나 이제 사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나보다.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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