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시력검사

약간의 거리 2018. 9. 19. 23:26

논문을 끝내고 난 후 눈이 급속도로 나빠졌다는 걸 알게 됐다. 병음료 뒤에 작은 글씨들을 읽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나이 탓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벌써 그렇게나 늙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최근 눈이 더 나빠진 것 같아서 드디어 안과를 갔다. 그동안 몇번 시도를 했는데 어찌나 일찍 문을 닫는지 두어번 방문했다가 진료를 받지 못했는데 어제 마침 평일에 휴무가 생겨서 병원을 가게 됐다.


의사는 시간이 있으면 1시간 정도가 걸리는 망막 검사를 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검사를 하면 사물이 하루는 흐릿하게 보이는 데 괜찮겠는지 물었다. 일단 무조건 괜찮다고 답을 하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간호사가 와서 약물을 넣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하는 오후에 한 약속이 생각나 흐릿하다는 것이 어느정도 인지 물었다.


그냥 좀 부옇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 운전은 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햇볕에 나가면 눈이 좀 부실거라고 했다.


두 가지 종류의 약물을 넣고 40분 정도 대기를 한 다음 의사가 다시 한번 눈을 확인하더니 검사는 끝이 났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눈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아라서 막을 수는 없다, 아직 안경을 쓸 정도는 아니고 더 나빠져서 안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한번 병원을 오라는 것이 요지.

나는 사실 저녁이면 책을 보는데 불편함이 있어 당장이라도 안경을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여전히 노안 같은 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꾹 참고 병원을 나왔다.


그런데 이건 웬걸. 눈이 너무나 부시다. 너무나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다. 선글라스는 미처 챙겨 나오지 않았고, 보통의 눈부심은 손을 이마에 올려 살짝 눈위를 가려주면 되는데 그런 걸로는 어림도 없다. 갑자기 너무 난감해졌다. 어떻게 해야하나... 그리고 사람의 윤곽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가봐야 피곤하니 그냥 눈을 감고 내일 아침까지 누워있기까지밖에 더 하겠는가. 버스를 타고, 창가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몇 정거장을 그렇게 가다가 눈을 뜨니 아까보다는 피로감이 덜 느껴졌다. 여전히 사물을 모두 흐릿하고, 눈을 잠시만 뜨고 있어도 금새 다시 피곤해졌다.


핸드폰에 울리는 카톡메시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려웠다. 메시지는 오랜시간이 걸려 겨우 읽을 수 있는데 모든 글자가 다 보이는게 아니라 그냥 문맥상으로 이해해야했다. 버스를 타면 으레하면 SNS나 포털사이트의 기사검색, 게임 같은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니 버스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귀도 잘 안 들리는 느낌이라 혹시나 내일 정류장을 지나칠까봐 음악을 듣는 것도 불안했다.

시험이 얼마 안 있으면 있어서 사실 남는 시간에는 어디서든 책을 좀 보려고 들고 나왔는데 괜히 가방만 무거워졌다. 책의 글씨라는 것은 초점이 안 맞아 읽을 수가 없다. 눈이 안 보이면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구나!

지인이 얼마전 안과 수술을 하고 눈이 침침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외선이 강해 낮에는 출입도 삼가고 집에 불끄고 가만히 있다 하였는데 나도 잠시 동안아지만 본의 아니게 장애 체험을 하게 되었다. 온전히 안 보이는게 아닌데도 이렇게 불편한데 정말 안보이는 사람을 얼마나 답답한 세상을 살고 있을지...


그런데 이 눈은 이제 점점 더 나빠질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하니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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