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오늘 또 길을 잃다.

약간의 거리 2018. 4. 11. 19:41

일년이나 이년에 한 번씩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버스를 탔는데 늘 가던 방향이 아닌 곳으로 가서 당황해보니 내가 타려고 했던 버스가 아닌 적도 있었고.

성수동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때에는 아무생각없이 집 앞에서 을지로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도 했다.

당황해서 내린 곳이 아는 동네일 때도 있고, 모르는 동네일 때도 있었는데

한결 같은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라서 2-30분씩을 헤매고 돌아다닌 다는 거다.

그나마 퇴근 길에는 다행인데

출근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지만 빼도박도 못하고 지각이라 ㅠㅠ


오늘이 바로 그렇게 2년만에 돌아온 길을 잃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갈아타는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회사앞까지 가는 버스는 11분이나 기다려야 도착이었다.

그리고 한번을 더 갈아타면 되는 버스는 5분후 도착.

평소 같으면

- 갈아타는 곳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따지면 그냥 한번에 11분을 기다리는 게 합리적이야,

하면서 조금 더 서 있었을텐데, 오늘은 일찍 나온 김에 회사도 아주 일찍 도착해보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덜컥 먼저 오는 차를 탔다.

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회사 앞으로 가는 다른 버스를 갈아탈 수 있는 정류장은 유일하게 <마리오아울렛 앞> 정류장이다. 사실 그 다음까지는 가 본적도 없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무서운 녀석 때문이었는지, 어제 저녁부터 이어서 보고 있던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영화에 지나치게 몰입을 했던 탓이었는지,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버스는 벌써 정류장에 승객을 내려놓고 우회전을 하고 있었다.

- 앗, 어쩌지 ㅠㅠ

하는 순간 버스에서는 “이번 정류장은 가산디지털 단지역입니다. 다음은 이 버스의 종점인 가산동입니다” 하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다. 돌아가는 것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는 회사에 가는 버스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5분 먼저가려다 5분 늦게 간다'는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 속담(?)을 잠시 떠올렸을 뿐.

버스에서 내리니 길 건너편에 가산디지털 단지역이 보이고 계단에서는 방금 도착한 지하철에서 내려와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전에 한번 여기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지하철을 타고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반대로 돌아갈 때에는 어디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두리번 거리며 길을 건넜다. 바로 지하철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가 보니 회사 앞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 조금 더 올라가 볼까?

하면서 한적한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맞은 편을 보니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아, 지난 번에 내가 내린 곳이 저기겠구나. 그럼 곧 이쪽에도 정류장이 나오겠지.'하면서 길을 걸었다.



'어제 그 비바람에도 꽃이 다 지지 않았구나.....' 그러면서 이렇게 꽃길 사진도 찍고...

그런데 이상하게 걸어도 걸어도 버스 정류장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리고 걷다보니 문득 거리가 조금 이상한 느낌.

그러니까 일단은 바닥이 보도블럭이 아니다. 나 말고 걷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왠지 자전거 전용도로나 공원의 걷기좋은 산책로로 만들어 놓은 길을 걷는 느낌이랄까?

내가 전에 가본 가산 디지털 단지역 앞의 도로는 뭔가가 어수선하고 복잡한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그런데도 나는 계속 사진을 찍고 ^^


그러다가 앗, 발견했다! 롯데 아울렛.

'아하~ 롯데 아울렛이 여기 있었구나' 가산에 있다고는 들었는데 여기였는지는 몰랐네. 근데 롯데아울렛이 있는 거면 방향이 어딘걸까?'

그러면서 걷고, 또 걷고.

아~ 오늘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선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어찌되었거나 중요한 건, 이 길은 내가 출근할 때 지나가는 길들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굉장히 한산하다는 거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갔을까? 저 멀리 고가도로가 보였다. 너무 반가왔다. 마리오 아울렛을 지나자마자 내가 건너가는 고가도로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반가움도 잠시, 나는 곧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은 저 고가를 완전히 지나간 다음에 있는데... 그런데 여기는 그 중간... 그러니까 나는 한블럭을 덜 간거구나. 그래도 한편 어딘지 알았으니 저 고가를 건너가면 되는 거잖아. 하는 마음에 씩씩하게 계속 걸었다.

그런데 고가 앞에 도착해 보니, 오른쪽을 지하철이 다니는 길이라서 사람이던 차던 가는 것이 불가능.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잠깐 택시를 탈까도 고민했었는데 안타기를 잘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단은 갈수 있는 방향으로 다시 좌회전.

그렇게 그렇게... 아까 원래 내렸어야하는데 놓쳤던 정류장까지를 ㅁ자로 돌고돌아와 도착하니 어느덧 버스를 탔던 시간에서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래서 아까 6분만 기다리면 탈 수 있었던 버스보다 한 20분쯤은 늦게 온 버스를 타고, 출근시간 3분 전에 회사 도착.

정말이지 오늘 일찍 안나왔으면 어쩔뻔, 어쩔뻔.


아침부터 30분을 돌고돌아 왔는데... 그 동안 조급증을 겪지 않게 해준 넘 재밌던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 감사...

사실 그 영화 때문에 벌어진 사단일 수도 있지만 ㅎㅎㅎㅎ

그리고 다시 이년동안은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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