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하기 싫은 야근이라고 하면서도 꼬박꼬박 해대는 것은 책임감 때문이라고 미화하고 싶은 마음
오늘은 대체 무엇때문이 야근을 해야 하는지 이것저것 이유들을 갖다대다보니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하는 전화해야하는 업무가 발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오늘 당장 해야 하는 일을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오늘 당장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지 못하고 미루고 있는 복잡한 심경
- 전화하는 게 왜 싫은데?
- 몰라. 나 원래 엄청 싫어해
- 전화를?
- 전화 받는 거 말고, 하는 거.
그리고는 말을 돌리고 돌려서 다른 이야기를 한참 주절거리다가 머릿속을 지나가는 한줄기 생각을 잡아채고야 말았다.
핸드폰이라는 게 생기면서 말이야.... 전화를 하면 바쁘다고 하면서 끊어버리고, 지금 못받는다고 하면서 끊어버리고, 그런 거절의 말을 듣는게 너무 싫어. 그래서 나는 못 받을 상황이면 아예 전화를 안 받거나, 일단 받았으면 끊으라는 말을 못하고 계속 통화한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전화를 걸기 싫은 이유들이었는데.
-나 방금 알았어. 왜 전화하는 거 싫은지. 옛날에 리포터할 때 말야. 섭외 전화하는 거 진짜 싫었거든. 걸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겁나고.
-그러니까 싫지.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 띠용~~ 그거였네
리포터를 할 때도 작가를 할 때도, 무수히 많은 거절, 거절
그리고 누군가 OK~ 할때까지는 절대로 끝날 수 없는 일.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통화를 해서 섭외가 되고나면 그때부터가 진짜 일이 시작된다는 거. 자료를 조사하고 질문지를 만들고... 그리고 방송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혹시라도 상대가 맘이 변해서 취소라도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었다. 그게 촉발요인이었다는 걸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닫다니... 나의 통찰력 없음에 ㅠㅠ
-그래서 내가 그만 둘때, 다음 직장은 1. 칼퇴하는 데 2. 사람 안 만나는데...
-하나도 안 바꼈네.
-그러게 고대로네
-그때 해결 안하고 도망쳤으니까 다시 그리로 들어왔지.
남의 이야기에는 하나도 관심없는 것처럼 무심히 자기 일만 하던 도현씨가 아주 나즈막하게 혼잣말처럼 던진 "하나도 안 바꼈네."를 모두들 물고 늘어지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는 거다.
정말이지. 매일 야근에다가 하는 일이라고는 리포터 취재도 아닌데 일대일로 마주앉아서 질문 던지며 이야기 들어줘야 하는 거라니!
아, 이다지도 판박이 같은 일이 있을 수가! 단 한번도 유사직종이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나는 다시 그 밭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돋보여야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조금 더 편안해졌나?
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그때는 내가 돋보이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나마도 없는 거 아닌가!
아, 진짜로 매력 떨어지는 직업이네.
그때 내가 그 직장에서 도망친 것이 아직도 내 옆에서 이렇게 돌고돌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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