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심리학

그 순간에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약간의 거리 2014. 10. 19. 10:37

오랜만에 남자에게 전화를 걸다.

남자의 첫 마디는 한결 같다.

- 어, 안나! 어떻게 지내냐?

 

오늘은 그의 이런 한결같은 인사가 이 전화를 참 반갑게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한 때는 이 남자의 이런 한결같은 때문에 이 남자가 싫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이 한결같음이 반가움으로 느껴진다니...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이다.

 

아무튼,

내가 오늘 이 남자에게 전화를 걸게 된 것은 '그녀' 때문이다.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한 싸이 홈피의 다이어리에 단 한 줄의 글이 써 있었는데, 5, 6년전 전쯤의 그 날에 썼던 일기 한 줄은 이거다.

<오늘 OO을 만났다. 행복하다.>

 

그녀를 어디에서 만났는데, 왜 만났는지,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그게 궁금하지만

그날의 나는 단지 그녀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했었나보다.

단 한 줄의 일기지만 그날 내가 정말 행복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말이다.

 

2014년이 되어 그녀와 나는 어찌저찌한 이유로 종종 만나고 있는데... 지금 그녀를 만나는 것은 그닥 행복하지가 않다.

그건 그녀가 싫어졌다거나 어떤 다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그녀와 나의 마음이 행복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를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서로를 보고 있는 것은, 분명 서로에게 힘이 되고 그 순간 안정감을 느끼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그 어떤 날처럼 행복하지는 않다. 어쩌면 그건 그만큼의 세월이 쌓인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가 그만큼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어떤 여자를 만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너무나 불행해 보이는 여자가 우리가 공유했던 -'함께'라는 말을 썼다가 지웠는데, 그때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공간에 있었지만 그게 함께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이다 - 시간에 그 여자는 그녀와 나를 보면서 참으로 불쌍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거다. 그게 그 여자에게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그녀는 비참했다고 했다. 그때, 그 시간에, 그래, 왜 그렇게 지냈을까?... 뭐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런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의 그 어떤 시간에 그 여자가 자신을 우리보다 우월한 어떤 위치에서, 그런 존재라고 느끼며 비웃었을지라도 그 시간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녀와 내가 느끼는 이 차이에는 분명 남자의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분명 그 시간들에 남자라는 존재가 나에게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울타리이기도 했고, 주변의 어떤 시선도 내것으로까지 가져오지 않을 수 있던 힘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 그때 말이에요.. 우리가 같이 일했을 때...

- 우리가 같이 일했었냐?

- 잊고 싶은 기억이라는 뜻?

- 야, 너도 늙어봐라....

남자가 어쩌구 저쩌구 농담을 하는데...

- 그때 고마웠다구요. 같이 일해서 다행이었어요.

- 나도 너 있어서 힘이 됐지..

- 그리구요.. 그때 나한테 왜 혼자서 결정하고 통보하냐고 했잖아요. 그 말도 고마워요.

- 내가 그런 말도 했었냐?

- 네. 근데 그때는 당연히 못 알아들었지만, 지금도 혼자 결정하지 않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치만 그때 그 말을 해 줘서 고마워요.

......

그리고 남자는 내가 왜 혼자 결정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나의 과거에서 탐색해 주려고 몇 가지 이야기를 던졌고 나는 그래요.. 어쩌구.. 했는데...

그래서 그날 이후 다시 나는

멘토라는 이름을 싹~ 지워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남자를 다시 멘토로 임명했다. 내 마음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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