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심리학

서툰 일

약간의 거리 2013. 11. 5. 23:27

완벽주의자라는 말은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적잖이 들었던 말이다.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내가 일은 잘하고 있기는 했지만 나는 한번도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보다 잘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이 일을 못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누구는 말귀를 못알아 듣고, 누구는 멀티가 안되고, 누구는 맥락을 알아채지 못하고, 누구는 몇 년이 지나도 끊임없이 자기일에 구멍이 있고......

그래서 못마땅한 사람 투성이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당연히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 그 사람의 기획력이며 아이디어가 부러운 사람들도 몇몇을 거쳐왔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이 멀티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만큼이나 내가 남들보다 일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충격이었다. 한 동안 나는 의식적으로 '그래, 내가 잘해서 그런거지!' 하며 척 아닌 척을 하고 살아야했다. 그게 내가 나를 인정하는, 또 남을 인정하는 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의 범주가 있다면 나는 당연히 그들보다는 상위 그룹에 속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는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맥락을 잘 읽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은 더 빨리 분위기를 알아채고, 일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걸 알아채는 데에도, 인정하는데에도 참으로 오랜시간이 걸렸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내가 여전히 서툰 일은 아마도 칭찬을 듣는 일인 것 같다.

지난 1박 2일간의 집단상담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너무 예쁘게 웃는다'는 말을 했고, 또 하나 '자기는 힘이 있으니까' 였다.

내 내면에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어제 쓴 문제점 때문에 비춰지는 모습이라고 아직은 생각한다.

 

그런데 웃는 모습이 예쁘다거나, 예쁘게 웃는다거나 하는 것은 하나의 보여지는 현상이므로 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본다는 나는 그걸 그냥 칭찬을 받아들여야하는데 번번히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내가 누군가 상대를 향해 웃어줄 때 내 얼굴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걸까? 단지 쑥스럽다거나 해서 예의상 하는 거절의 말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 걸 받았던지, 어느 순간 나는 그 예쁜 웃음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 그게 정말 답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아주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방송 리포터를 시작하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서 인사를 해야 했고, '안녕하세요.'하는 말이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않아 매일 출퇴근 하는 지하철 역에서 사무실까지의 10여분 거리동안 혼자서 '안녕하세요'를 다양한 톤으로 바꿔가며 여러달 동안 연습을 했다는 사실이다. '안녕하세요'하면, 그 톤에 따라서 표정도 다양해지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데 아무래도 그때 그런 표정도 만들어진 모양이라는 것이 나의 답변이었다. 그럼 어쨌거나 이런 답을 찾았으니 나는 예쁘게 웃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아니에요'라고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학교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잘 아셔서..', '너무 열심히 하세요.' 등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나는 또 그때마다 '아닌데...'를 얼버무리고 있다.

칭찬의 말에 '아니에요'라고 답하는 내 마음의 진짜 소리는 무얼까?

아니에요, 라는 말을 통해서 겸손하고 예의바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에이, 뭘요, 진짜 열심히 하는데' 하는 더 큰 칭찬이 듣고 싶은 걸까?

 

칭찬은 고맙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 나에게는 정말 서툰 일이다.

 

다~~ 잘 하시면서, 칭찬을 칭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지는 못하시나봐요!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