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업사업인 K는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영업실적도 우수하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영업사원은 아니었는데 사무직으로 근무할 때에 그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서 영업직원들과 고객을 연결시켜 주는 일이 많았는데 K를 보고 고객된 사람들이 후속처리 등을 계속해서 K에게 요청해 오는 것이다. 그는 서글서글 했고, 어떤 요청이 왔을 때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서 담당 영업직원과 어색하게 통화를 하느니 K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고객들의 반응이다.
워낙에 활동적인 K는 동아리 활동도 많이 한다. DSLR 카메라 동호회에서 주말이면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니느가 하면 겨울이면 스키장에서 살다시피하고 이때에도 콘도 예약 등을 주선하는 등 적극적이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K가 소집해 주기를 기다리고는 하였다.
오래된 친구들과 남녀를 불문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K에게 연락하기 일쑤였는데, 그만큼 K가 마당발이어서 자신이 전공으로 하고 있는 분야가 아니어도 인맥을 끌어내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K의 고민은 연애다.
여기저기 활동을 하다보면 의도해서, 혹은 의도하지 않아도 가까워지는 여성이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깊은 연애로는 발전하지 않았고, 많아야 두어번의 만남이면 여자쪽에서 자연스레 시큰둥해져서 연애라고 할 것도 없이 흐지부지 관계가 정리되기 일쑤이다.
나름 여자들의 심리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유머감각도 있다고 생각하고, 맛집도 많이 알아서 데이트를 한다 치면 스케쥴도 알아서 잘 구성하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여자들이 두번이상은 잘 안 만나려고 하는 걸까?
사실 오래 전 맘에 드는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여성과도 K와도 아주 친한 누나뻘의 여성이 그 여성에게 K와 절대 사귀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는 거다. K와도 친한 사이고, K의 인간됨됨이를 좋아한다는 그 누나뻘의 여성은 왜 K의 연애에는 반대했던 걸까?
K에게는 흔히 사람들이 B형 남자의 특징인 것처럼 뭉쳐놓고 말하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은 '변덕'이라고 부른다.
K는 종종 사람들과 약속을 해 놓고서 그것을 아예 잊고 연락을 하지 않거나, 다른 일정으로 변경을 한다. 강남역에서 만나서 삼겹살을 먹자고 약속을 해 놓고서는 전화를 해 와서 '오늘 어디서 만날래?'하고 물어보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어떤 날은 하도 연락이 없어서 상대가 먼저 전화를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게 오늘이었어? 담주였잖아. 담주에 봐. 그때 조개찜 먹으러 가자. 여의도에 진짜 맛있는 데 있다.' 하면서 전화를 끊는 식이다. 친구들은 한두번 그런일을 겪다보니 K에게서 연락이 오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말고, 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고, 그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K의 이런 모습은 연애 상대에게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연애 하는 사이에 이렇게 수시로 깜빡하고, 어제 했던 말 바꾸고하는 남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는 동료의 동호회에 우연히 따라갔다가 K를 만나게 되었다. 동호회 모임 이후 K에게 느닷없이 전화가 왔는데,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좀 당황하기는 했지만 매끄럽고 유쾌하게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K가 별로 나쁘지 않았다. 며칠 뒤, 퇴근 무렵 우연히 회사 근처를 지나가게 됐는데 혹시 퇴근하느냐는 전화를 K에게서 받고는 만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만나게 된 자리지만 퇴근 시간 맞춰 남자가 차를 가지고 회사앞까지 와 준다는 사실이 약간 흥분이 되기도 했다. 낯선 이성과 차에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시종일관 질문과 농담을 던지는 K의 말재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저녁으로 뭘 먹고 싶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몇몇 맛집을 추천하던 K는 P가 결정을 머뭇거리자 앞서 추천한 곳 중 하나를 결정해 안내를 했는데 그런 태도도 나쁘지 않았다. 음식도 맛있었고 집 앞까지의 에스코트까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후에 K는 종종 전화를 걸어왔고 두번째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약속한 날, 퇴근시간이 다가와도 K에게는 연락이 없는 거다. 고객을 계속 만나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연락이 쉽지 않은가보다, 생각을 하고 퇴근 무렵이면 지난번처럼 회사 근처로 올수도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맘을 먹었는데 역시나 퇴근 10분전 전화가 왔다.
- 아, 어디에요?
- 집인데요.
- 네?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요.
- 오늘? 아, 내가 ~~~
K는 뚜렷한 이유를 댄다거나 잊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다른 주제로 옮기고 전화를 끊었다. P는 좀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아직 딱히 사귀는 관계도 아닌데 집에 있다는 사람에게 다시 나오라고 할 수 없고해서 그냥 퇴근을 했다.
그 다음날 K에게서 전화가 왔다. P는 조금 시큰둥해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미안해서 전화를 했구나 하는 생각에 친절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K는 언제나처럼 유쾌하고 힘있는 목소리다. 주말에 영화를 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P가 좋다고 했고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날지 물어볼 새도 없이 K는 전화를 끊었다. P는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전화는 잘 하는 사람이니까... 하고는 넘겼다.
약속한 날 아침 P에게서 전화가 왔고, 두시간 후 쯤 집 앞으로 데리고 갈테니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P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이면 준비하기에 그닥 촉박하지도 않은 시간이고,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연락이 온 것도 좋았다. 주말에 만나자 해 놓고는 내내 연락 없다가 2, 3시쯤 되어 '1시간 후에 만나.'하는 남자들은 정말 지긋지긋하니까. 아침부터 일어나서 샤워하고 머리감고 나와서는 준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점심을 먹자고 하려나 더 늦게 만나려나, 고민하고, 결국 점심도 못 먹고 앉아 있으면 왜 내가 주말에 늦잠도 못자고 아침부터 만나서 이러고 있나, 한심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미리 단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고 있자니 엄마는 왜 안나가냐? 약속 있는거 아니냐? 계속 말을 걸거구, 결국 차리지도 안차리지도 않은 어정쩡한 차림새로 주말 반나절을 보내고 나면 전화와서는 1시간 후에 만나자니, 옷 입고 BB만 대충 발라고 준비하는데 한 시간은 걸리는데, 그럼 약속장소까지는 날아오라는 이야기인가!
어쨌거나 K는 그런 남자들하고 다르기는 했던 거다. 차를 탈 거니까 너무 불편하지는 않은, 그렇다고 야외에 나가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편하게 보이지도 않는 옷으로 골라입고 P는 집 앞에 나왔다. 잠시 후 K의 차가 도착했다.
- 어, 뭐지?
분명 K의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 거다. 것도 여자다.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웃고 있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창문을 내리더니 '안녕~' 하면서 손을 흔든다. P를 처음 동호회에 데려갔던 동료였다.
P는 '아.... 안녕!.'하고는 뒷문을 열어 차를 탔다.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P는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심 K와의 데이트가 될거라고 기대했던 마음이 창피하기도 하고, 앞자리의 동료가 '너 앙큼하게 나 몰래 데이트 했던 거니?' 할 것만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당연히 내가 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옆자리에는 버젓이 다른 여자가 앉아있고 뒷자리에 앉아 있는 신세가 한심스럽고 화가 나가기도 했다. K는 이런 P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종일관 유쾌하다. 정말 저 남자는 나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는데 나혼자 계속 김칫국을 마신 건가?
그날 이후에도 K에게는 몇번 연락이 왔지만 P는 전처럼 그렇게 친절하게 말하지 않았고, 흔쾌히 OK~하면서 만나자고 하지도 않았고, 결국 자연스럽게 K와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K는 자기의 인맥이나 영업력을 보았을 때 자신이 친화력이 높고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타입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에서 남성으로서는 인기가 없다고 생각해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고, 이제는 맘에 드는 여성에게 고백하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고 있다.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겼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그나마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는 하는 여성들과도 어색해 질까 싶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친구나 동료 등의 관계로는 분명히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는 데 왜 연애는 번번히 실패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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