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졸업

약간의 거리 2012. 2. 12. 10:23

살을 에는듯한, 영하20도 아래라니 정말 다른 표현은 할수 없는, 그런 추위가 이제 막 한풀꺾인 밤, 종종걸음을 치며 귀가를 서두르는 여자의 귀에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는 하이톤의, 그치만 약간 걸걸한 느낌이 강한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졸업축하합니다. 졸업축하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곳을 바라본다.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비둘기색 패딩점퍼에 퍼머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가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졸업축하합니다. 졸업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딸~ 졸업..,


이 부분에서 숨을 한번 고르더니 다시 재빠르게 반복한다.


사랑하는 우리딸 졸업,중3졸업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해! 기쁜날.

중3 졸업이구나. 근데 졸업이 기쁜날이었나?

전화를 하며 늦은밤 길거리의 정적을 깨는 엄마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기쁜날 같았다.

여자의 기억이 먼 과거로 돌아간다. 중학교 교정. 감색재킷에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은 여자아이.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있다. 아마도 기념사진을 찍는듯한테 표정이 우울하다. 하나도 기쁜얼굴이 아니다. 배경에 여자와 비슷한 꽃다발을 들고 친구, 또는 가족과 사진을 찍는 아이들이 보인다. 근데 여자는 왜 혼자 사진을 찍고 있는걸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졸업사진을 증명사진처럼 혼자 찍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몇 년을 건너뛰어 고등학교로 간다. 시끌벅적한 강당. 그 외에는 생각나는게 없다.

여자는 언제나 졸업이 슬펐다. 그것은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며 곧 새로운 것들과 대면해야 한다는 신호인 것이다.
전화기 건너편의 아이는 진짜행복할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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