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병원

약간의 거리 2012. 2. 13. 12:03

여자가 싫어하는 TV 프로그램은

인간극장

병원24

SOS

...

휴먼다큐 중에서도 특히나 아픈 사람이 나오는 거는 무조건 싫어한다.

그래서 한 때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랑시리즈 같은 것도 보지 않았다.

 

우선 여자는

아픈 사람을 보는 것이 싫다.

그냥, 아프니까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같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싫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진실로 아픈건 아니니까.

 

아픈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가족들은

아프고 힘들다. 그리고 그로인해 많은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불쌍한 건 아니다.

"아유~ 불쌍해서 어떻게... "

"너무 안됐다."

"그래도 대단하네."

이런 말들을 여자는 싫어한다.

 

 

그런 여자가 얼마전 얼떨결에 따라가게 된 것이 병원 봉사라는 것이다.

사실 몸으로 뭔가를 나누는 것은 오래전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번번히 가게 되는 곳은 장애아동 보육시설이거나 하다보니 몇번 가다 금방 그만 두게 되곤 했다. 말도 잘 못하고, 혼자서는 입지도 씼지도 먹지도 잘 못하는 애들을 보는 게 여자는 힘들었다.

 

오늘 여자는 두번째로 다시 병원에 오게 됐다.

아침부터 생각이 많았다. 왜 오겠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그만 둔다고 할까, 일할 사람 하나 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그치만 정말 만나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는 와중에 다행이 오늘까지는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면 된다고 했다. 여자가 파트가 된 분은 역시 이번이 두번째 라고 했는데 연세가 좀 있는 아주머니 였다.

 

여자가 하는 일은 병동의 2개층 정도의 병실을 돌아다니면서 가톨릭신문과 주보를 나눠주고, 혹시 원목실에서 파악하지 못한 신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신자나 혹은 원하는 분에게는 기도를 해 주는 간단한 일이었다. 파트너인 아주머니는 자유기도를 아주 잘 했다. 오랫동안 기도모임을 해 왔고, 또 본인은 병원에 아픈 환자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청해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생겨서 정말 좋다고 했다. 처음에 여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도를 잘 하는 아주머니와 파트너가 되어서.

그리고 참 이상한 일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토록 여기에 오기싫어하는 여자, 아픈 사람이 나오는 건 TV조차 보지 않는 여자와 너무너무 이 일이 하고 싶은 신출내기 두 사람이 짝이 되다니! 이 무슨 신의 장난인가?

 

여자의 파트너는 기도를 잘하는 만큼 공감도 잘했다. 병실을 하나씩 돌고 나올때마다, 어쩜 좋으냐며, 자기는 정말 가슴이 아파 죽겠다고 했다. 여자는 그저 네~ 하고 조용히 응답했다. 두번째 층을 막 돌기 시작했을 때였나, 5인실 병실의 창가쪽에 젊은 여자분이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었고, 남편이 간호를 하고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병실을 나설때, 문가쪽에 계신 아주머니가 우리를 따라나섰다. 남편이 지극정성 간호를 하니 꼭 좋아질거라고 말할 때 나도모르게 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근데 저집 딸이 둘이나 있는데 엄마 손도 안 잡는다며, 스무살씩이나 된 것들이 못됐다고... 험담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여자의 파트너가 장단을 맞추었다. 문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충분이 환자나 보호자가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지 말았으면 싶었는데... 옆자리 환자는 오랜만에 대화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고, 여자의 파트너 역시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을 나눌 파트너가 생겨 좋은 모양이었다.

병실의 사람들에게는 기도보다 중요한게 안부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옆자기 환자의 안부를 나누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여자는 서둘러 자리를 옮기고 싶었다. 혹시라도 그 여자환자의 남편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몹시 기분이 나쁠 것이다. 다음에 다시 우리가 찾아왔을 때 맘이 상해 있을수도 있다.

무서워서 그렇대요. 뭐가 무서워? 지들 엄만데.

그래도 그렇대요. 스무살이면 아직 어리잖아요. 엄마가 누워있는 거 보는 것도 무섭고 겁이 난다고 전에 어디서 봤어요.

그러면서 여자는 동행인을 재촉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기도 잘해서 좋다고 생각한 여자 파트너가, 기도만 좋아하고,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만 크지, 환자의 안부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 여자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여자의 파트너보다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치만 여전히... 아픈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 멈칫,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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