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생신이 되어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였다.
원래 날짜는 목요일 저녁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하루가 앞당겨졌다고 했다. 외할머니 생신을 우리 집에서 준비할 때를 빼고는 굳이 내가 그 자리에까지 가지는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분위기 탓에 나도 참석을 해야할 것만 같이 원래 있던 약속을 취소했다. 생신을 먹기로한 전날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갔는데 엄마의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갈지말지라며 이야기가 없다. 나는 정확한 약속 장소도 모르기도 하고, 엄마가 가지 않는 자리에 굳이 갈 이유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에 갈지 말지를 확실하게 말해달라고 했는데 엄마는 정확한 답은 피했지만 가지 않을 듯안 분위기를 비추었다.
다음날 퇴근시간이 다 되어오는데 엄마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내가 먼저 해 봐도 되지만 그냥 그러기가 싫었다. 아마도 가기 귀찮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거다. 약속도 취소됐겠다, 모처럼 집에 일찍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날보다 퇴근을 서둘렀다. 40분을 갔을 즈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할머니 생신에 가는 거야. 지금 나왔어.
순간 나는 짜증이 밀려왔다.
-그럼 나한테 미리 연락을 했어야지
-지금 나오는 거야.
-나오려고 맘을 먹었을 때 바로 전화를 했어야지. 나는 어떻게 하라고?
-너 어딘데? 일단 거기서 내려.
참 속 편한 소리도 하고 계신다는 생각 뿐이었다. 할머니 생신잔치를 하는 곳은 6호선 증산역 인근. 지금 내가 탄 지하철은 용산을 지나 노량진으로 가고 있다. 회사가 안국역이어서, 회사에서 바로 가면 3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황당하고 짜증도 나고 막막했다. 나는 그만 되었다며 그냥 집으로 가겠노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노량진에서 내렸는데 그래도 안가면 서운해 할테니 일단 가기는 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는데 정말 어디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6호선? 하니 생각나는 역이 광흥창역 뿐이었다. 노량진에 9호선이 있으니 그걸타고 국회 앞으로 가서 서강대교를 건너 광흥창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9호선을 타보는 구나! 하며 노량진역으로 들어갔다. 9호선은 퇴근시간임에도 참으로 띄엄띄엄 다녔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노선표를 살펴보니 당산역을 지나갔다. 복잡한 퇴근시간에 버스나 택시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느니 당산역까지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합정에가서 다시 6호선을 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버스에 1호선, 9호선, 2호선, 6호선,... 정말 멀고 험난한 길이라는 생각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약속장소까지 가는 시간이 다시 한 시간이 걸렸다. 이제 막 먹을 수 있게 익은 해물탕 앞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 나서는데 막내동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늘 밤샘을 하거나 야근을 하는 막내에게는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동생은 좀 일찍 퇴근을 해 집에 온 것이다. 그래봐야 벌써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그런 일에 특히 예민한 동생은 그간 여러가지 서운할 것들을 엄마에게 토로했다. 물론 지금 이 초대받지 못한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서. 뭔지 내내 맘이 안 좋았던 엄마도 흥분을 했다. 그리고 서로 눈치보고 사느라 힘드니 각자 나가살라는 늘 나오는 그런 결론이 나왔다.
눈치보는 거 나는 물론 싫어한다. 누가 내 눈치를 보는게 느껴지면 갑자기 짜증스럽고 화가나고, 그래서 그런 감정을 표출하면 안그래도 눈치보던 사람은 더 긴장하고 움추려들어 더욱 더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게 동생이 내게 이야기하는 불만의 요지다. 그러면서 나 역시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눈치'보는 거 싫어하고, 그래서 나도 남의 '눈치'는 안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그게 쓰이는 표현이 다른 걸거다. 남의 분위기나 기분을 살펴서 행동이나 말을 조심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 좋게 만드는 것을 우리는 주로 '센스'가 있다고 말할테니까. 하지만 센스 있게사는 사람인들 피곤한 순간이 없을까?
그러니까, 요즘들어 삼촌들에게 서운한 것이 많았던 엄마였는데, 마침 할머니 생신 저녁을 먹기로한 날짜가 사전에 합의한 것과 달리 바뀌어버렸고, 그것을 엄마는 삼촌에게 전해 듣지 못해서 맘이 상해 있었던 거다. 그래서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안 가기로 맘을 먹었는데 인근에 사는 다른 삼촌이 같이 가자는 연락을 해 와 부랴부랴 집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앞에 설명한 것처럼 그런 이유로 짜증이 나 있었고, 그러다보니 동생에게 까지 연락을 해 줘야 한다는 신경이 써지지 않았던 거다.
세상에 몇가지 일에나 모두가 즐겁고, 아무도 서운하지 않고, 어떤 이도 피곤하지 않은... 그런 경우가 있을까?
하물며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도 연락을 하는 친구가 있고, 장소를 잡는 사람이 있고, 그냥 오기만 하는 애도 있고, 번번히 늦는 애도 있다. 그런데도 만나서 함께 먹고 이야기하는 순간은 즐거우니까 투덜투덜하면서도 우리는 또 만나는 거다.
그런데 그 순간 순간의 서운함을 계속 쌓아두었다가 언제나 나만 눈치봐야하고, 언제나 나만 피곤하다고 하면, ... 세상에 정말 어떻게 살 수 있겠냐는 말이다.
나는 그런 성격이야. 유난히 남 신경쓰고, 남에게 칭찬듣고 싶어서 아둥바둥 예민하게 움직이는.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남이 예민한 거에 무디고, 그냥 만들어져 있는 상황은 그런건가부다.. 하면서 지나가는 성격이라 그게 누가 노력한건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 칭찬을 건네 줄 모르는 성격인 걸 어쩌랴.
내 성격이 그러니까 맞춰달라고
그럼 원래 그런 그 사람 성격은 누가 맞춰주나.
이게 요즘 매일 같이 크고 작게, 보이게 보이지 않게 삐걱대는 우리 집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운한 이야기다.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졸업 (0) | 2012.02.12 |
---|---|
Tell me more (0) | 2011.06.15 |
첫 눈 (0) | 2010.11.09 |
사랑을 할 때 (0) | 2010.10.07 |
2010. 9. 9. (0) | 2010.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