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기억속의 그대에게

약간의 거리 2009. 12. 26. 21:27

 

나는

나를 기억해 주어 고맙다고 하고

 

너는

그때 그 시간 속에 내가 있어서 고맙다고 하고

 

너는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을 잊었는데

너와 내가 함께 한 시간이 겨우 10년이니

난 정말 간당간당 살아남은 거지, 너의 기억 속에.

 

기억의 끄트머리에 내가 있어서 고맙다니 고마워.

 

 

 

오늘 우리 승호는 9개월간의 상담 치료를 끝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서기 전

승호는 그의 선생님께 커다란 목소리로

"나 잊으면 안돼요." 하고 말했다.

 

나 잊으면 안 돼요....

 

나도 언제나 잊혀지는게 두려웠다.

어차피 잊혀질 거라면 처음부터 기억속에 남기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래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도 잘 못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건 남들도 싫어할 테니, 상대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애시당초 잊혀질만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잊히는게 싫은게 아니라 기억되지 못하는 걸 더 싫어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기억속에 남아 있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잊히거나 할 존재조차 되지 못하는 것.

 

세상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건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나는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미련이 용수염처럼 얇디 얇게 흩어질 때까지 잡고 늘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미련이 또 미련스럽게 싫고도 징그러워서 애시당초 그런 걸 만들지 않고 싶다. 그러니 시작 또한 힘들 수 밖에.

 

 

처음 네가 10년의 기억을 잃었다고 했을 때

나는 두루두루 여러가지로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

내가 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다는게 정말로 고마웠다.

그런데

네가 기억하는 그 순간 속에 내가 있어주어 고맙다니!

나는 그 동안 네게 여러가지로 화내고 짜증내고 힘들어했는데

그런 내가 있어주어서 고맙다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너무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가 더 궁금해 졌어.

그 사람도

기억 속의 어떤 시점에 내가 있어서 고맙다고 생각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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