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요?
-회기역
-지하철 탔어요?
-아직... 기다리고 있어.
회기역
그녀와 나는 회기역을 좋아한다. 아니, 아마 그녀도 좋아할 것이다.
우리가 회기역을 좋아할 만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는 '회기역'이라는 곳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때부터 '회기역'이 좋았다.
'회기역'은 꼭 '회기역'이라고 발음해 주어야 한다. '그 역'이라고 대체해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면 그 이름과 발음을 할때 입술의 움직임이 없다면 '회기역'은 더 이상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우리는 특별히 '종로에서'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우리는 매일 점심과 저녁을 종로에서 만나 함께 먹었지만 그 때문은 아니다. 그냥 그 노래가 좋기 때문이다.
그 노랫말 중에 '회기로 떠나는 쓸쓸한 플랫폼에서~'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 가사 때문에 '회기'역을 알게 됐다. 그 전에는 청량리를 지나서 지하철을 타고 가본 적이 없다. 그때부터 '회기'역은 뭐라고 해야 하나? 노랫말처럼 쓸쓸함이 묻어나면서 헤어지는 연인들이 한번쯤은 스쳐가 줘야 하는 역같은 이미지를 내게 갖게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10년 전 그때에 기억이 멈춘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회기역에 서 있다.
플랫폼 끄트머리에 발을 걸치고 까닥까닥 하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 온다.
아, 이거구나!
나는 아주 느리게 주변을 둘러본다.
플랫폼에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지만 아직 전광판에는 열차 도착을 알리는 불이 들어올 기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느새 가을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있다.
-회기역
이라고 말할때 약간 슬펐다.
-지하철 탔어요?
하고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하다. 단지 내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할지에만 관심이 있는 목소리다.
10년 전 그때 나는 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회기역'이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졌을까? 왜 그 이름이 좋았을까? '회기역'이라는 말이 없었더라도 내가 그 노래를 좋아했을까?
우리는 어쩌면 '회기역'을 거슬러 10년의 시간을 되짚어 가고, 그리고 다시 '회기역'을 거쳐 현재로 돌아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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