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려 회사까지 가는 길 남자는 자꾸만 걸음이 빨라진다. 그리고는 회사 앞 횡단보도가 보이기 시작하면 긴장이 풀린다. 어제도, 그제도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었는데... 길을 걷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몸은 괜찮은지 물어볼까?' ...
하지만 번번히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늦게 나왔는데 마주친거라고 했었나, 그럼 좀 더 일찍 나가볼까?.. 그렇게 며칠을 허탕지고 나니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조금 늦은 출근길. 그래도 담배는 사야하니까, 편의점에 잠시 들린다. 담배에 불을 붙일까, 말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5분 이상 지각은 곤란하니 우선 회사까지 열심히 걷기로 한다.
방금 산 담뱃갑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들던 남자는 멋칫 했다.
여자가 언제나처럼 횡단보도 앞에 서 책을 읽고 있다.
곧 파란불이 들어올 참이다.
'어떻게 하지?'
잠깐 망설이는 새에 신호등이 바뀌었다. 여자는 서서히 고개를 든다. 사람들이 이미 두어 걸음을 뗀 뒤에야 여자는 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지각한 걸 모르는 건가? 에이 모르겠다. 그냥 지나가야지!' 맘을 먹은 남자는 속도를 붙였다. 그런데 여자 옆을 막 스치는 순간 남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 여자의 얼굴에 반가운 표정이 스치는 것을 설핏 봤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가 지나가는 걸 미쳐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는데 자꾸만 여자의 구둣발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 여자의 보폭이 조금 커진 것 같다. 속도도 조금은 빨라진 듯하다. '아니야, 오늘은 모른 척 하기로 했잖아!' 마음은 자꾸만 걸음을 재촉하는데 몸은 조금씩 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깨에 뭔가가 닿는 느낌이 든다. 너무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거라고, 자꾸만 뒤돌아 볼 핑계를 찾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성큼 발을 옮기는데
"저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애써 관심없는 척 흘끔 돌아보는 남자에게 뛰듯이 쫓아오는 여자가 보인다.
"저 오늘 구두굽 무지 높거든요!"
저도 모르게 멈칫 남자의 걸음이 멈춰졌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여자의 표정이 숨차 보인다.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겨우 "오늘 늦었거든요" '아, 너무 퉁명스럽게 말이 나가버렸잖아'
"이제 속도가 맞네. 너무 높은 굽을 신었더니 빨리 걷기 힘들어서요."
쌩긋 웃는 여자 표정 때문이다.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여자의 보폭에 속도를 맞추고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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