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죽을 뻔 해 본적 있어요?"
여자는 참 잘 웃는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여자는 거의 언제나 웃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출근길에 마주치는 여자는 5분, 10분.. 함께 걸어가는 시간 동안 말이 없다.
인사도 눈인사나 고개를 까닥이는 정도이니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다. 질문을 던져봐도 네, 아니요... 정도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에서 네번째로 만난 날 여자가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까의 그 느릿느릿했던 걸음은 마치 남자가 무의식 속의 뭔가를 꺼내어 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너무나 씩씩하게 남자와 보조를 맞추어 걷던 여자는 무언가를 골똘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죽을 뻔 해 본적 있어요?"
하고 물었다.
걸음이 느렸던 게 아니라 여자의 모든 움직임이 느린 영상으로 보여진게 아닌가 싶었던 것처럼 여자의 목소리도 그렇게 마치 에코가 들어간 듯, 한 옥타브는 높은 소리가 웅웅 울리며 들려왔다.
- 아니, 없는데
여자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씁쓸한 표정이 스쳤던가? 조금 전 너무나 느리게 걷던 여자가 생각났다. 잠시 걸음을 멈췄었나. 그랬었던가. 어디가 아픈 건가.
다시 여자와의 사이를 침묵이 메운다. 그리고 조금씩 여자가 뒤쳐진다.
- 자다가 그런 적은 있는데
- ...
질문을 던져 놓고는 답을 해도 반응이 없는 여자다. 못 들은건가?
- 자다가, 아니 자려고 누웠다가 그런 적은 있다구요
아주 작게 여자의 고개가 움직인다. "네, 네. 알아들었거든요" 하는 듯한 반응이다. 그리곤 아주 작은 소리로, 마치 혼잣말을 하듯이
- 그럼 죽는 건가?
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순간 대답한 걸 후회하는데 여자가 성큼 다가와 거의 어깨가 부딪힐 뻔 했다. 당황할 새도 없이 여자는 남자에게 얼굴이 들이밀고는
- 그래서요? 얼마나 그랬는데요?
하고 묻는다.
여자는 이제 완전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회사 복도에서 동료들과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던 세상에 '흐림'이라는 날씨는 존재하지 않는 것같은, 크리스탈 잔을 살짝 부딪힐 때의 나는 소리처럼 맑은 날만 있다는 듯한 그런 모습으로 당황하는 남자에 아랑곳없이 호기심 가득찬 눈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 금방 괜찮아졌어요
- 그게 다에요?.. 음.. 하긴 안 그러면 지금 만날 수가 없었겠구나
난 길을 걷다가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 본 적은 있는데.
남자가 무슨 말을 할 새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놓던 여자가 잠시 시선을 맞춘다. 그리곤 금새 눈을 찡긋하며 봄햇살 같은 미소를 짓더니 "아까 그랬다구요" 한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여자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벼운 목인사를 건네고는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