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날씨

빈 빨대 빠는 소리

약간의 거리 2008. 8. 7. 09:26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던 때에는 '장마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비 좀 그만 내렸으면...' 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어찌나 간사한지 내리쬐는 햇볕에, 땅에서 반사되어 올라오는 열기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것조차 곤혹스러운 날이 계속되자 절로 '비라도 한번 내려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녹을새라 빨대로 쪽쪽 음료를 빨아들이다보니 금새 폭폭거리며 빈 소리가 난다. 잠시 기다리면 얼음이 녹아 약간의 물이 생긴다. 그러면 또 다시 빨래를 빨고 있는 남자다. 자꾸 반복하다보니 재밌다.

"선배! 뭐하는 거에요? 그냥 커피 한잔 더 드실래요?"

 

 

여자는 좀처럼 차가운 음료는 먹지 않았다. 언제나 뜨거운 커피를 시켜 놓고서는 남자의 팥빙수에 먼저 숟가락을 꽂는 것이다.

 

"팥빙수 싫다며?" "응. 머리아파" "덥다며 왜 뜨거운 거 시켜?" "흐흐 금방 추워질거란 말이야."

 

차가운 걸 먹으면 머리가 아프다거나, 커피숍의 에어컨 때문에 금방 추워질 거라 더운 걸 시켜서 대비해야 한다거나... 그런 이유를 대며 여자는 늘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중국집에 가면 당연히 짬뽕이 먹고는 싶지만 언제나 자장면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라고 설명했다.

 

가끔, 아주 가끔 극장에서 오렌지맛 환타를 마실 때면 여자는 예고편과 광고가 나가는 새 그 많은 음료를 다 마시고는 얼음 사이에 남아 있는 빈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를 내고는 했다. 사람많은 밀폐 공간, 극장 안에서 그런 소리를 내는 여자가 남자는 좀 창피했다. "벌써 다 마셨어?" "응" "더 사올까?" "아니 영화 시작하기 전에 마실라구 빨리 마셨어." "근데 왜 자꾸 소리내~" "다 마신줄 알았는데 빨아보면 또 물이 있어"

얼음이 녹아서 자꾸만 물이 생긴다고 말할 때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슬프다고 남자는 생각했던 것 같다.

 

 

포록포록 폭폭... 다시 한 번 빨대로 빈 커피잔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남자에게 지환이 인상을 쓴다.

"왜? 창피하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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