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죽을 뻔 해 본적 있어요?
원래 이 길은 여자의 출근길이 아니다. 대부분의 회사 사람은 이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회사 앞까지 가는 마을 버스를 이용하지만, 남자는 일부러 한 정거장을 더 와서 15분 정도를 걸어서 회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요즘들어 가끔씩 남자는 출근길에 여자와 마주치곤 한다. 남자가 여자와 마주칠 때 여자는 대부분 횡단보도 앞에서 책을 읽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여자는 "책을 읽다가 한 정거장을 더 왔어요. 그래서..."라고 말했었다. '설마...'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날 여자가 혼자 웃었다, 찡그렸다 해가며 책을 읽는 모습을 봤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오늘 아침 여자를 본 것이 네번째다.
거의 대부분은 횡단보도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었는데 오늘은 횡단보도까지 아직 5분은 더 걸어야하는 거리에서 여자를 발견했다. 여느때처럼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매고 다른 손에는 책을 한권 들고 있는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는 잠시 멈추어 선다. 남자는 시계를 본다. 출근시간이 빠듯하다. 잠시 후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여자다. '저런 속도로 걷다간 지각하겠는 걸.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가야지.' 남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남자다.
또각또각. 항상 조금은 바쁜듯한 그리고 빈틈같은 건 주지 않겠다는 듯이 짧게 끊어지는 여자의 구두소리가 익숙한 남자다. 여자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 '머리가 아픈 걸까?' 잠시 심호흡을 하는 듯 걸음이 멈추일듯 이어진다. 여자와의 거리는 자꾸만 좁혀진다. 결국 여자의 곁을 모른 척 스쳐지날 즈음 남자의 걸음걸이는 여자와 보조를 맞출 만큼 느려졌다. '어쩌지...' 하면서 다시 보폭을 넓히려는데 여자가 남자의 어깨를 친다.
"나 오늘 좀 늦게 나왔는데..." 어딘가 많이 아파보이던 좀 전의 모습은 간데없이 여느때처럼 남들보다 한 톤은 높은 목소리로 여자가 말을 한다. 순간 남자는 안도와 후회가 스친다. "그런데요?" "그렇다구요. 더 일찍 나올때 만났었는데 오늘은 늦었는데도 만났다구요" "......" 남자의 침묵에 여자도 말이 없다. 횡단보도가 보인다. 곧 신호가 바뀐다. 조금만 빨리 걸으면 건널 수 있는 거리다. "신호등 바뀌었네." "그럼 뛰세요." 좀전과는 사뭇 다르게 퉁명스런 여자의 목소리. 뛸 마음은 없었다. 평소같으면 인사만 나누고 스쳐갔을 여자와 애써 보폭을 맞춰 걷는 남자다.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졌다.
남자는 횡단보도에서 회사까지의 거리가 유독 멀다고 느낀다. 어차피 이럴거면 그냥 뛰어서라도 건넜어야 하는 건데 후회를 하고 있다. 습도가 높아서 인가 여자와 남자 사이의 공기는 흐르지 않고 멈춰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마음속으로만 잰걸음과 느린걸음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런 어색함 사이로 여자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죽을 뻔 해 본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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