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날씨

B 이야기

약간의 거리 2009. 7. 4. 23:35

B가 겨울마다 입는 코트는 만든지 족히 30년은 된 것이다. 짙은 감색에 벨벳으로 된 원단이 아주 무거운 코트다. 안감은 닳고 닳아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안감에는 양복점 이름이 선명히 남아 있는 그 코트는 그의 아버지가 입던 옷이라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따뜻하지도 않으면서 무게에 어깨가 짓눌리는 코트의 헤진 안감을 드디어 새로 바꿨다는 B의 자랑을 들으면서 그가 아버지를 그리워한다는 걸 알았다.

B의 어머니는 작은 부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엄마와 동네 어귀의 다른 집에서 살았다. 그의 엄마는 기가 세고 말씨가 곱지 않다고 했다. 팔순이 다된 지금도 병원에 가면 어찌나 괄괄하게 간호사들에게 이야기를 하는지 B는 항상 불편하고 민망하다고 했다.

B의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묻는다.

-B가 원래 혼자였어?

-무녀독남이야?

-난 형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네. 네. 네. 저쪽 멀리에서 B가 나이가 지긋한 어떤 조문객과 마주 앉아 웃고 있는 걸 바라본다. B의 웃음이 마음이 짠 하다.

 

B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암을 앓았다. 암센터를 10년 넘게 드나들다 벗어난지 겨우 2년만에 다른 곳에 암이 발병했다. 3기말이었고, 의사는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했다. B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회복될거라 믿던 B의 어머니가 죽음을 감지한건 겨우 이십여일 전이었다. 말수가 없어졌고, 표정은 슬퍼졌다. 그리고 B는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어머니를 두고 가는게 걱정이라는 B는 주말마다 올라올거라 했다.

B가 두번째로 서울을 올라오는 길,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고 두 시간후 임종하셨다.

 

일행을 따라 나도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운해하는 표정이 B의 얼굴에 스친다.

-내일 올께요

-어. 그래

-오지 말라고는 말 안하는 것 봐.

-내일 올께요.

 

병원까지 가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한 시간이 채 안걸리는 거리에 있는 병원을 성큼 갈 수가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으로 걷다가 되돌아 걷는다. 쇼핑몰에 들어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고 나와 시계를 본다. 너무 오래걸렸나. 택시를 탄다. 정상대로라면 5분 남짓 걸릴 거리. 경인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차들 때문에 도로는 꽉 막혀 있다.

-다른 길로 가도 될까요?

- 네. 편하실 대로요.

택시는 우회전을 한다. 두 블럭을 가서 다시 좌회전을 하면 양평교를 건너 바로 병원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택시는 한 블럭을 가더니 좌회전을 한다. 이상하네, 길이 바뀐건가. 길 끄트러머리에서 차가 우회전을 한다. 롯데제과.

고등학교를 갈때 버스정류장 이름중에 롯데제과앞이 있었다. 그래서 이 동네 어디즈음엔가 롯데제과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롯데제과를 보는 건 처음이다. 아.. 여기였구나. 하는데 택시는 양평교 아래에 와 있다. 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아래에 서 있으니 대체 어떻게 건널건가... 차는 우회전을 한후 얼마즈음을 가다가 다시 양평교를 향해 유턴을 한다.

평소보다 두서너 배쯤은 더 걸려서야 택시는 병원 앞에 도착했다.

 

 

하늘이 흐리다.

나는 벌써 병원에 B를 두고 온 걸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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