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커다랗고 하얀 수건으로 방금 샤워를 마친 몸을 돌돌말고, 혹시나 흘러내리지 않을까 염려하며 매듭을 한번 더 확인하고는 욕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남자는 여느때처럼 말끔한 셔츠에 타이를 매고 쟈켓까지 걸친 상태로 서 있었다. 여자의 눈에 유난히 하얀 셔츠가 확대되어 들어왔다. 공포영화를 기다란 복도에서 쿵쿵 다가오는 검은 생머리의 귀신처럼 남자의 하얀셔츠가 성큼성큼 커지는 것이었다. 분명히 어제 여자를 만날 때 입고온 셔츠일 텐데 아내가 정성껏 다려 옷장 안에 걸어둔 것을 방금 꺼내 입은 것처럼 그 셔츠는 주름 하나 없었고, 은빛 흰색이 반짝였다.
- 벌써 다 입었어?
여자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 늘 그랬는데 뭘
다르다... 여자는 그렇게 느꼈다. 오늘 이상하다. 뭔가가 다른다. 다른 날과 같지 않다. 저 사람도 나도, 그리고 옷을 잘 차려입고 있는 모습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쿵쾅거리고 떨린다. 분명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 막연한 불안감이 깊이 파고들어온다. 여자는 다시 목소리의 톤을 올린다. 경쾌하고 말하고 싶은데 그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 그랬나? 나도 얼른 입어야겠다.
- 천천히 해.
여자의 약간 띄운 목소리와는 달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여느때보다 조금 더 저음이 되었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화장대 앞에서 누가 쓰던 것인지 모를 로션을 바르는 남자에게 여자는 다가간다. 그리고는 살며시 남자를 안는다. 남자가 웃는다. 마음이 허하다. 여자는 남자의 웃음소리도 여자의 마음처럼 그렇게 어딘가 비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하고 있지만 뇌의 한 켠은 여자가 남자의 마음과 이 묘하게 비어있는 분위기의 이유를 찾고 있듯이 남자 역시 그렇게 마음 한 쪽이 뚝 떼어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