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이제는 없는...

약간의 거리 2008. 10. 11. 12:32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의 요청으로 정지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메시지라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때, 매일 이 음성을 들었다.

기계음이 아니지만 마치 기계음인듯

그 목소리는 차가왔고, 건조했다.

 

예고도 없이 유일한 연락책인 삐삐를 끊어버린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아서

매일 없어진 번호인 줄 알면서도 삐삐를 쳤다.

아니... 정지된 번호이니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삐삐는 왜 "친다"는 표현을 쓴 걸까? 그리고

"친다"는 것 이외의 다른 표현은 왜 없는 걸까?

나는 삐삐를 치기 위해 공중전화를 걸었고, 정지된 번호라 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그럴때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연락처가 바뀌는 것에 대해 느끼는 당황스러움이나 섭섭함같은 것.

 

오래(?)전부터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싶지만 바꾸지 못하는 것은

바꾸고 싶은, 그치만 바꾸고 싶지 않은 두 개의 마음과 하나의 이유...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이런 차갑고, 무미건조한 여자의 음성이 싫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핸드폰은?

죽일거야.

거참... 죽인다는 말 쉽게하네

응? 그럼 뭐라고 해?

아니요... 두번 생각도 안하고 말한다구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는데, 나는 결국 떠나올 때까지 핸드폰을 정리하지 못했다.

대신에 동생에게 떠난 후 해지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궁금해졌다.

 

 

핸드폰이 꺼져있어...

'아직 해지가 안 됐구나!'

 

안도와 실망이 공존하는 순간

 

다시 하루 뒤, 동생에게 메일이 왔다.

고객센터 직원의 꾐으로 한달에 1,100원씩을 내며 핸드폰은 살려두기로 했단다.

어차피 내가 돈 내는 거 아니니까... 라고 했다.

 

 

다시 또 안도와 실망

 

 

내 스스로는 버릴 수 없었던 미련이 남의 도움으로 걷힐리는 만무한 것이었다.

핸드폰 번호가 바뀌면 마음이 정리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끝내 내 힘으로 그걸 바꾸지는 못했다.

 

언젠가 내가 들었던,

 

고객으로 요청으로 정지되었다느니,

더 이상 없는 번호라느니...

 

그런 멘트들...

다른 사람에게 그런 쓸쓸함을 던져주기엔 난 아직은 조금을 덜 메마른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미련...

괜한 기다림을 주는 건 아닐까?

헛된 기대를 갖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이제 다시는 내 핸드폰의 정지메시지 같은 건 듣지 않겠지만,

누군가 핸드폰이 다시 켜졌는지를 매일 같이 확인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때의 내가

끝을 받아들일때까지

매일 다시 확인했던

삐삐 정지 메시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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