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때 친구들 몇몇이 돌려쓰는 일기장이 있었다.
선생님과 친구 셋이 .. 사실은 하루씩 쓰고 돌려야하는데 거의 방학이 되어 시작한 일기장은 한 사람이 일주일씩 갖고 있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일기장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른 친구들보다 자주 만나야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날 나는 서류, 필기, 면접,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체검사를 한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결핵이 의심된다고 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이제 가족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건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는 나는 마음껏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 떨어졌다."
사실 채용시험에서 신체검사를 한다는 건 그 회사에 다니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일이다. 신체검사를 해서 떨어지는 일은... 나같은 애 한테나 두 번씩이나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러니까 세 사람이 일기를 쓰고 다시 돌아온 노트에서 친구의 그날에 대한 기억을 보게 되었다.
-영주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많이 슬플거다. 그 애는 늘 슬픈걸 밝은 척으로 감추니까.
'내가 그랬나?'
그렇게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친구가 이제는 멀어져서 슬프다.
겨울이었고,
추웠고,
혼자 있었고,
그리고 나는 질병을 통보 받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감염이 가능한 병을.
나는 두려웠다.
그 겨울,
나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존재였고,
그래서 나는 마땅히 그들로부터 멀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그 겨울이 더 추울것만 같아서.
숨길 수도 숨기지 않을 수도
곁에 있을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나는 두려웠다.
그 친구에게 내가 사실을 말했던가? 말하지 않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울음을 그쳤을 때에도 여전히 고요하기만 집에서
나는 정적을 깰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나를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사람이어야 했고,
그래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말 한 적은 없지만
그때...
엄마가 나를 계속 한 집에서 살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
월요일에 학교에서 TB test를 한다고 한다.
조금 걱정이 된다.
결핵은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한국에서도 신체검사를 하면 언제나 CT촬영까지 다시 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내가 치료를 받았었고 완치가 되었다는 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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