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씨에게

약간의 거리 2008. 3. 11. 00:14

상우씨,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묻던 상우씨가 난 우스웠어요.

뭐 저런 걸 묻는 사람이 있나? 그런 느낌...

변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거니까요.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우씨의 사랑도 변했잖아요.

 

은수씨랑 상우씨.. 참 좋아보였어요.

부럽기도 했구요,

늦은 밤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오는 로맨틱한 남자.

순간 그 사랑이 너무 황홀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좀 두려웠어요.

불같이 일어난 사랑은 그렇게 또 한 순간에 식어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난 은수씨... 좀 이해가 됐는데.

 

당신은 그때 참 어렸죠...

너무 순수했던 건가?

 

헤어지고 난 어느날 다시 택시로 고속도로를 달려온 당신.

뭐 이런 무모한 사람이 다 있나? 이 정도면 거의 스토커 수준 아닌가! 그렇게 보이기도 했고

 

당신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 했고, 분노했고, 슬픔과 좌절에 빠졌죠.

그리고 그 사랑에서 빠져나왔죠...

 

은수씨는 당신이 싫어서 떠난 건 아니었을 거에요.

두려웠을 거에요.

사랑도 변하는 거니까.

언젠가는 끝나는 거니까.

이런 꿈같은 나날들이,

영원이 나만을 바라볼 것 같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나를 싫어하게 되는 거, 사랑이 식어서 무미건조해 질지도 모른다는 거, ..

그런 미래가 다가올 거라는 게 두렵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먼저 이별의 말을 전해 듣고 싶지 않았겠죠.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처절하게 매달릴 때, 스토커처럼 늦은 밤에도 불쑥 모습을 나타낼 때,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차를 긁고 사라질 때,

그럴 때마다 짜증과 함께 약간의 안도감 같은 걸 느꼈었는지도 몰라요.

 

더 이상 당신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때

그런 시간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달 두달 석달...

그렇게 흘러가고서야 생각이 났겠죠.

 

당신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은수씨 자신이 괜히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 버린 거라고...

 

 

하지만 다시 찾아간 봄날의 벚꽃길 아래에서

당신은 참 냉정했어요.

왜냐면 당신은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슬픔의 강을 건너 당신의 사랑을 떠나보낸 뒤였으니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지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랑 같은 건,

정말이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에나 존재하는 이야기인 거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어떤가요 상우씨?

그런 시간들이 흘러간 후의 당신 마음 말이에요.

당신은... 이제 괜찮은가요?

당신은 이제.. 잘 지내는 건가요?

 

그때 당신이 사랑했었다는 걸 부정한다거나, 후회한다거나,... 뭐 그렇지 않은가요?

그냥 조금은 가슴이 아픈 추억이 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다른 사랑을 또 시작할 건가요?

 

 

은수씨는 어떨까요?

잘 지낼까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옷깃을 여며주고, 악수를 청하고,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보면서도 결국은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던 은수씨.

그녀는 말이죠.

분명이 먼저 이별을 말한 건 그녀였는데...

그런데도 그녀는 분명 역시나 이번에도 또 그녀가 채였다고 생각할 것만 같죠...

왜냐면 그녀는 변할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묻던, 당신의 사랑 역시 변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뭐 그렇다고 해서 사랑 장애자인 그녀를 당신이 꼭 책임졌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슬펐다는 이 영화가 제게는 조금도 슬프지 않았던 건,

제가 아마도 은수씨 입장에 좀더 가까웠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채이기 전에 차버려야지! 했는데......

 

역시 상처는 눈에 보이는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치료가 돼죠.

남들 앞에서 아픈 척 하기도 쉽고 ^^

 

나는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성큼 성큼 걸어가는 당신을 잰 걸음으로 겨우겨우 쫓아와 "상우씨"하고 팔짱을 껴며 웃던 은수씨의 그 미소가 자꾸만 자꾸만 마음이 아픕니다.

 

다시 또...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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