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러브레터... 잘 지내나요?

약간의 거리 2008. 3. 9. 00:18

 

눈이 내리는 날.

여자는 죽은 남자친구의 추도식에 와 있다.

담담한 듯 향을 피운다.

별로 슬퍼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집

죽은 남자친구의 엄마와도 스스럼이 없는 여자

그 남자의 옛 앨범을 보며 웃고 있다.

 

 

그리고 여자는 소년 시절의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후지이 이츠키...

 

 

이름 외우기라면 정말 자신 없는 내가 이 이름을 외우고 있는 건,

영화를 두 번 봤기 때문일까?

소년시절 후지이 이츠키가 넘 멋져서일까?

 

이 영화가 싫었다.

개봉하기 몇년 전 이미 어떤 사람이 열 번도 넘게 봤다고...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참 궁금하던 영화였는데...

그런데.. 난 이 영화가 싫었다.

뜻하지 않게 극장에서 돈 내고 두 번이나 보기는 했지만.

 

누군가 왜 싫으냐고 물으면

죽은 남자의 선배가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남자들 왜이렇게 못 생긴거야? 그 사람 나오는 장면만 보면 불쾌해져. 근데 너무 많이 나와.

 

아마..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여자는 남자의 어린 시절을 찾아가 본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는

남자가 죽은 눈 덮인 산으로 간다.

 

-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사람이 울지 못하는 건

마음이 모질어서가 아니다.

 

남자의 추도식에서 향을 피우며 평온한 마음이 든 여자는

"매정한 여자라서 미안해" 라고 말한다.

여자는 갑자기 남자친구가 사라져버린 충격과

그가 죽었다는 슬픔과

그의 죽음에도 평온한 마음에 대한 죄책감까지 붙들고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자기가 알지 못하는

그 남자의 과거에까지 집착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영화를 싫어했던 것 같다.

떠난 사람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미련과 집착에 쌓인 영화 속 주인공을 보는 것이 내내 불편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후지이 이츠키를 알게 되면서

여자는 비로소

죽은 남자친구에게 원망과 미움을 갖게 되고, 그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게 되고, 그리고 그를 떠나보낸다.

 

그가 죽은 눈 덮인 산 속에서

- 잘 지내나요?

하고 물으며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그 장면이 아름다운 건, 그때의 그 여자 주인공이 예뻐보이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사랑에 순수했고,

그 사랑에 예의를 다해 추도했고,

이제 그 사랑을 기꺼이 떠나보내니.. 그러니 그녀가 아름다울 수밖에

 

 

후지이 이츠키.

그 이름을 외우고 있는 건..

그녀는 떠나 보낸 그 남자를

나는 아직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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