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핸드폰 번호의 배신

약간의 거리 2008. 4. 1. 23:08

 

 

010-0000-0000 으로 핸드폰 번호가 변경되었습니다 

 

 

 

핸드폰 번호가 바뀌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가끔씩 상실감이 들 때가 있다.

바뀐 번호를 알려주었으니 굳이 서운할 것이 없는데도 웬지 그 사람에게서 내가 떨려 나갔다는 느낌이 들어 몇 날이고 바뀐 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버티고는 한다. 개인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준 사람한테도 이러하니 메신저에 덜컥 핸펀바뀜 하고 번호만 올려 놓은 사람은 무조건 애써 외면해 버린다.

 

핸드폰이 바뀌면 이전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 번호를 옮겨 저장하지도 않고, 그나마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이상 1년에 한번, 아니 2,3년에 한번조차 연락도 하지 않으면서 왜 그런 상실감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 놓고선 가끔씩 생각한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어야겠다. 만약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 바뀐 번호를 알려주기는 싫고.. 음.. 우리 성당 애들한테만 알려줄까? 그리고 회사 사람들 중에서 친한 몇명에게만. 흠... 이래저래 꼽아보면 가족까지 다 합해도 바뀐 번호 알려줘야겠다 맘 움직이는 사람은 저장된 사람중 30%쯤에 불과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미련이 없는 양, 대충 떨궈낼 궁리를 하면서 남들은 친절히 알려주는데도 섭섭한거... 이상한 이기주의. 아니면 괜한 피해의식?

 

 

번호를 바꾸고 싶은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참고 버텨왔던 이유가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번호를 바꾸어도 괜찮겠다... 아니, 바꾸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가 바뀌면 마음이 자유로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정말 그런 결과가 올지 오지 않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또한 나에게 남아있는 하나의 미련, 집착임에는 분명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의 번호 바뀜에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것도 그 집착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나에게 아직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딱 하나의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지려면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유일한 끈.

 

 

 

십년이나 이십년이 지난 후에 만나

 

 

마치 헤어진 다음날 바뀌어 버린 버스 노선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만나러 올 수 없는 거라는 생각처럼.

전화번호가 바뀌는 순간 우리의 약속도 자동해지 된다고 믿어왔다.

말라버린 우물,

혹 없는 낙타,

바람빠진 풍선,

가시없는 장미,

의미없는 기대 같은 거.

 

그러니까 바뀐 핸드폰 번호 알려주는데도 황당스럽게 배신감 느끼며 저장 안하고 버티는 어이없음.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것이 충분히 분노하지 않아서 버려질 수 없었던 상처를 치료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까? ......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생각만, 생각만,,,, 그리고 행동하지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함.

 

 

 

지난 주말   "전화했었네... " 하며 날아온 모르는 번호의 문자메시지

 

-앗, 번호 바뀌신 건가요?

-그래도 예전 번호도 연락가능하단다.

 

 

그런데도 나는 또 속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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