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날씨

비를 맞다

약간의 거리 2007. 9. 29. 01:38

비가 내린다.

가을에 무슨 비가 이렇게 계속해서 내리는 거냐고 투덜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남자는 아무 느낌없이 걷고 있다.

횡단보도에 선 남자가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진다. 담배를 찾아 물고 라이터에 불이 붙이던 남자의 시선이 멈칫한다.

'는개'라고 하던가... 이런 비는.

빗속에 어떤 여자가 펴지 않은 우산을 손에 든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

 

 

-뛰어

-왜?

-응? 비 오잖아.

-그러니까... 뛰어도 똑같이 젖을 건데 왜 뛰냐고?

-으휴... 바보야! 가서 말해 줄께. 일단 좀 뛰어

 

남자는 여자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겨우 커피숍에 들어와 앉은 여자는 뭐가 불만인지 계속 투덜거리고 있다.

 

-생각해 봐. 걸어오면 5분 걸리는데 뛰면 1분밖에 안 걸리잖아. 5분동안 비를 맞는 것과 1분 동안 맞는 게 같아?

-음.. 그런가...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하던 여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너 진짜 바보다

-근데 말야. 나는 사실 좋았는데

-뭐가? 비 맞는게?

-응. 난 비 맞는 거 좋은데... 우산을 들고 비 맞고 있으면 사람들이 미친 줄 알잖아. 그러니까 오늘처럼 우산 없을 때는 핑계삼아 비 맞기 딱 좋았는데...

 

 

잠시 멎는 듯하던 빗방울이 이내 굵어진다.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 보더니 여자는 우산을 펴 든다.

언제 바뀌었는지 벌써 파란색 신호등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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