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외근을 나온 남자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남자는 아침저녁에는 서늘해서 몰랐는데 한낮에는 아직도 여름이구나, 생각을 하며 쟈켓을 벗어 든다.
중앙차로로 버스 정류장이 이전한 후에는 나무 그늘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에 지칠때면 사 마시던 캔커피가 그립지만, 이제 버스 정류장에는 간이 매점도 없다. 봄이면 너무 흉측맞게 잘렸다고 생각되던 나무들도 이맘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름드리 잎들을 달고 그늘을 만들어 정류장 표지를 가리고는 했는데...
버스 번호가 바뀌고, 노선이 바뀌고, 차선이 바뀌고,
나무 그늘이 사라지고, 간이 매점이 사라지고, 그리고...
헤어지던 날,
마지막으로 여자를 집 앞에까지 바래다 줬을 때 여자는 말했다.
-내일부터 버스 노선 바뀐대. 다행이다... 혹시 오고 싶어도 이제 우리 집 못 찾아 오겠지.
그때 뭐라고 대답을 했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회사로 들어가는 버스가 막 출발을 하려는 게 보여서 남자는 서둘러 손을 흔든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보니 중앙차로가 사라지게 만들어서 좋은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도 않게 정류장 끄트머리에 서 있다가 차선을 바꿔 달아나 버리던 버스. 덕분에 미쳐 버스를 발견하지 못해 머뭇거리던 남자도 이렇게 버스 올라탈 수 있지 않았나.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그리고 어떤 나쁜 일에서도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 거라고... 위로해 본다.
모처럼의 외근. 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 따사롭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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