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극은 ↗에서 비롯된다.
첫번째는 그것이 양방향이 아니라는데서 비롯되고,
두번째는 그것이 비록 양방향일지라도 하나가 아니라는데서 비롯된다.
얼마전 봤던 연극 <갈매기>에서보면,
꼬스차가 사랑하는 여인 니나,
니나가 사랑하는 남자 뜨리고린,
뜨리고린은 사랑에 정착하지 않는 남자,
(정착하지 않는다는 건 무수히 많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꼬스차를 사랑하는 여인 마샤,
그런 마샤를 좋아하는 뚱보 선생님,
결혼을 했지만 마을의 의사를 좋아하는 여인...
이렇게 얽혀 있어 단하나의 양방향 ↔ 를 찾아낼 수 없으니
연극은 코믹(?)했지만 비극일 수밖에 없다.
영화 <주홍글씨>도 그렇다.
가희를 바라보는 수연
수연에게 돌아서 기훈을 바라보는 가희
가희와 수연... 모두를 사랑하는 남자 기훈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일탈을 꿈꾸는 경희
어떤 기사에서 본 것 같은데....
그 사람의 앞을 보는 건 '스토커'고, 뒤를 보는 건 '사랑'이란다.
그치만 '뒤'를 본다는 게 유쾌하고 행복한 일일 수는 없다.
영원히 '뒤'를 봐 줄수 없다면 돌려세우려 노력할 것이고, 그것은 결국
(글쓴이 이론에 따르면) 사랑이 스토커로 변질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히 '뒤'를 본다면 어찌될까?
그 역시 뒤에서 있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비극이 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그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보고 있다는 건 몰랐을 때, 앞 사람에게도 비극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주홍글씨>를 보고 일어섰을 때,
그들이 말한 선악과를 따먹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을 잠시 먹었다가는
어차피 줄이 닿지 않는 복잡한 화살표에서 대체 선악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아~ 사랑!
지독히도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0) | 2004.11.11 |
---|---|
기다리지 않는다 (0) | 2004.11.07 |
깨짐 (0) | 2004.10.28 |
행복을 가져온 전화 한 통 (0) | 2004.10.27 |
시니컬한 남자 (0) | 2004.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