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처음 타본 저상버스

약간의 거리 2004. 8. 6. 14:48
 

예전에 했던 방송에서

어떤 경로에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장애우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장애인의 날 방송이었나?

한 사람은 출연을 하고 있고,

한 사람은 중간에 전화연결을 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였는데...

그때가 장애인이동권에 관한 문제가 붉어져 있을 때였다.

오이도 역에서 리프트 사고가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였고,

아마도 광화문에서 장애인들이 버스타고 내리기 시위를 했던 때 같은데....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나다니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런 글을 써서 읽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다. 웬만하면 출연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사전검열(?) 같은 건 하지 않는데, 이번엔 나도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미리 원고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다.


버스 문이 좁고, 보도의 턱이 높고..... 그런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동정에 호소하는 글이었다.


- 버스 타실 때 계단이 많아서 혼자는 당연히 못타고, 남이 휠체어 들어주기도 힘들죠?

- 네

- 그럼 그 말도 쓰세요. 그리고 내리는 문에 예전엔 가운데 봉이 없었는데 이제 그거 생겨서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시죠.

- 네

- 그럼 그 말도 쓰시구요. 그 봉은 왜 만들었냐구... 쓰세요

- 그렇게 써도 돼요?

- 그럼요... 요구하고 싶은 거 다 쓰세요.


몇 번의 전화 통화와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방송을 했다.

우리 피디는 “와~ 저분 진짜 말씀 잘 하시네. 섭외 잘 했어요.” 한다.

하지만 저 분들 당당히 요구할 기회를 줘도 말씀도 잘 못하신다. 대부분 배움이 짧다보니 말에도 논리가 없고, 사정하고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혹은 몹시 과격하기만 하거나...



얼마 전, 한 장애인 복지재단으로부터 전동휠체어를 기증받은 친구와 연극을 보러 가게 됐다.

수동 휠체어를 타던 시절엔, 장애인 협회가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하던가, 서울시에서 운영하던 장애인 택시를 타던가, 그 마저 여의치 않으면 택시, 혹은 친구들이 한사람은 업고, 한 사람은 휠체어 들고 오르내리며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자기도 이제는 자가용 생겼다면서 의기양양하게 지하철을 타게 됐다.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에서 내려 국립극장까지 올라갔다. (동대입구역은 아직 엘리베이터가 없다)

아직 운전이 서툰 녀석은 보도와 차도 사이의 턱이 나타날 때마다 머뭇머뭇.. 조금 낮은 곳을 찾아 헤맨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보니 간격이 너무 넓어서 주저하고 있는 사이 문이 닫히는 바람에 한 역을 더 가야만 했던 적도 있단다.


차도보다 인도가 높은 걸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은 했었다.

<사람나고 차 났지, 차 나고 사람 났나? 왜 내가 오르내려야 하는 거야? 차가 피해다녀야지>

그래서 나는 육교도 싫고 지하철도 싫다.

편히 달리는 녀석들이 땅속으로 들어가고, 고가로 달리면 되는 거지, 왜 날 고생시키는지 말이지...


그런데 그날 그 친구 보면서 더 많이 생각했다.

좀 잘 만들지... 어차피 이어지는 곳에는 턱을 좀 낮게 만들 거였으면, 좀더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하지... 참, 성의 없게도 만들었네.


그날 첨 장애인들 이용하라고 만들었다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에 가는 길 청구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5,6호선이 교차하는 역.


< 이 지하철은 지하 2층과 3층만 운행합니다 >


- 우리 몇 층서 내려?

- 몰라요.

- 너 저번에도 왔었다며?

- 응... 기억이 안 나죠.

- 참내... 2층이 6호선인지, 3층이 6호선인지 써줘야 할 거 아냐? 모 이러냐?

 

결국 잘못내려서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이동해야 했다.



기왕 만드는 거 설명 한 자 더 붙이고, 엘리베이터도  비슷한 위치에 만들어서 이동거리 줄여주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 나 알바로 써주면 이런 흠 찾아내서 시정하기... 진짜루 잘 할 수 있는데




원래 하려던 이야기가 이게 아닌데...

어제 드디어 눈으로만 보던 저상버스를 탔다.

뭐...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저상버스

 

 

앞문에서 들어오는 길이 좀 좁아보였지만 서로 양보하면 될거구, 근데... 들어온 담에는 어디 서 있어야 하지?

암튼 좋긴 하더라.

서울시가 버스체계 개편이 엉망이니 뭐니 하면서, 예산이 아깝다... 어쩌구... 지적을 받으니 알아서 주춤하던 모양인데... 돈이 얼마가 들던 이건 해야 하는 일 같다.

버스 갈아타려고 한 20분정도 정류장에 앉아서 보니 새로 생긴 노선에서는 1/4 정도가 저상버스 인 것 같았다. 괜히 왜 내가 뿌듯하던지............


모처럼 세상 돌아가는 일 중에 흐뭇한 일이 하나 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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