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았어! 내가 속은 거야. 여우한테
- 무슨 말이야? 속인 건 아냐!
- 어쨌거나 그때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거 아냐?
도서관에 자리를 잡을 때면 사람들 오가는 것이 걸리적 거려서 피하던
통로쪽, 그것도 입구를 바라보며 앉는다.
시계가 오전 11시가 넘어가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예상문제 두어개만 찍어서 만들던 요약답안을 만들 수 있는한 최대로 만든다.
(나는 어차피 안 볼 거지만 그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 앉은사람 움직임이 시야에 잡히는 게 싫어서 제일 앞자리에만 앉았는데 자꾸만 뒷자리로 옮겨 앉는다.
(나란히 곁에 앉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어느 순간 내 주변을 돌고 있는 아이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점심을 주문해 놓고 갑자기 혼자 밥먹을 내 생각이 나서 달려 나왔다는 아이.
복잡한 과방에서 슬그머니 옆구리를 찌르고는 귤이 먹고 싶다던 아이.
도서관에서는 죽어도 공부가 안된다면서도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오는 그 아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날 버스 앞자리에 앉아 유난히도 말이 없던,
그저 비가 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던 아이.
-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비 오는 것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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