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헤어지는 길

약간의 거리 2001. 9. 8. 22:20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때로는 습관처럼, 때로는 의무감으로, 또 때로는 보고싶은 마음을 참다 참다 만납니다.
어떤 느낌으로 만나든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애에 대한 저의 짜증이겠죠.
보고싶은 마음을 참다 참다 만나면
왜 꼭 정해진 그 날에 만나야 하는지도 짜증이 나고
습관이나 의무감으로 만날때는 그 단조로움이 또 짜증스럽고
내가 화를 내건, 짜증을 내건, 잘 웃던, 무뚝뚝하던, 조용조용하던
한결같기만한 태도도 저에게는 때로 불만입니다.

제가 그다지 남을 편하게 해 주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화도 잘내고 성격도 변덕스럽고 싫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짚고 넘어가야하고, 표시해 주어야 하고,......
그애가 저를 아주 많이 좋아해 줄때까지는 뭐든 그애 맘에 들게 하겠다고 맘 먹은 적이 있었어요.
오기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고
쉽게 맘의 문을 열지 못하는 그애가 언젠간 나의 정성에 감복할 날이 오게 만들 거라고......
지금 그애는 저를 아주 많이 좋아해 주지만
제가 처음 꿈꿨던 그 곳까지 다다를 수 없다는 걸 진즉에 알았습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얼굴 마주 할 수 있고
또 언제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오늘은 그애를 만나고 몇달, 아니 몇년만에 큰소리 한번 짜증 한번 안내고 돌아온 날입니다.
헤어질 즈음해서 묻더군요.
오늘 왜 이렇게 고분고분 한 거냐구...
그런가? 아파서 그런가봐. 나 아프니까 좋지? 화도 안 내고...
아니 안 아프고 화 내는 게 더 좋아.


몇년 동안은 그애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지금 가는 저 뒷모습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그애를 몹시 원망도 했었습니다.
오늘은 아프다는 핑계로 모처럼 제가 먼저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남겨진 그애의 모습이 웬지 낯설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