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트로이 2

약간의 거리 2004. 6. 5. 10:48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타고난 영웅으로 태어난 아킬레스.

어느 날 그는 그리스-트로이 전쟁에 참가에 줄 것을 요구 받는다.

왕을 위해서는 싸우지 않겠다는 아킬레스에게

오딧세이는 그러면 나를 위해 싸워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될 전쟁이며, 아킬레스는 그 역사에 영웅으로 남게 될 거라면서.

고민을 하던 아킬레스는 어머니를 찾아가고, 어머니는

너는 트로이에 가게 되어 있었다고. 그곳에서 너는 영웅으로 기억될 거고, 다시는 그리스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영웅이 되는 것과 죽음은 함께 가는 거라고.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그냥 결혼을 해서 손주를 낳고 사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죽으면 그의 가족들만 그를 기억할 거고, 그 가족들도 죽은 후에는 아무도 아킬레스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그게 어때서? 왜 가족과 행복한 게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만 못한 거야?

남자들은 왜 영웅이 되고 싶은 거지?


생각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책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이름들.

한때 그 이름들을 보면서 “멋지다. 역사책에 실릴 정도면 정말 대단한 거겠지” 라고 생각했던 시절.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아마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생활상이 알려지면서 부터이지 싶다.


아버지가 영웅이고, 역사책에 이름이 실리면 뭐하나?

남은 가족들은 헐벗고, 쫓기고, 배우지 못해 대대로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

단지 이름 석자만 아는 수천, 수만의 사람에게 영웅으로 대접 받는 것이 (사실 그 대접이라는 것도 죽었으니 실질적인 이득도 없는 거다. 그러니 어쩌면 기억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기억되는 것이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여기서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차이가 드러난다.

둘다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아킬레스는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했고,

헥토르는 나라와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아킬레스 역시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기 때문에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진정으로 한 여인을 사랑하고, 그 여인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에,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영웅으로 남게 된 것일 거다.


영웅이란 결국, 여인을 통해서 만들어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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