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건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드는 건 줄 몰랐어"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명대사.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나요?
-아뇨
누군들 처음부터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첫 눈에 반했던 것에 대해 좋았던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청바지.. 나도 별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 맘을 사로 잡은 다른 디자인이 있었기에 꿋꿋하게 우겨서 사들고 왔지만 한번 입고는 다시는 입지 않았던 기억....을 비롯하여 어떤 물건이든 한눈에 너무나 맘에 들어 산 것은 늘 그 한 번 뿐이었고,
아주 오래 전 한 눈에 반했던 어떤 오빠도 그 뒤로는 영 꽝~ 이었다.
몇번의 실패를 거듭한 뒤로
한 눈에 맘에 드는 옷이 있다면, 2,3일쯤 뒤에 다시 한번 가서 보고 그 때도 맘에 들어야 샀고,
사람 역시
'난 사람 보는 눈이 없어.'라면서 절대 한번에 맘에 드는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상대 역시 한 눈에 내가 좋아졌다고 하면,
-저에 대해서 뭘 아시는 데요?
-뭘 꼭 알아야 하나요?
-그건 아니지만... 모르고 어떻게 좋아하나요?
하면서 발톱을 세우게 됐다.
그러면서도
사랑은 교통사고 같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사랑이란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며,
나만 열심히 방어한다고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려고 노력하고, 방어하려고 노력하듯이 열심히 피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면허가 없기에 운전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언덕길에 신호정지를 받아 서 있을 때 앞차가 미끄러져 내려와 나를 받았을 때라도 안전거리 미확보라는 이유로 나에게 얼마간 책임이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나에게 한 사람이 서서히, 혹은 순식간에 다가와 꽝! 하고 부딪혀 버리면 어떻게 하지?
'난 가만히 있었는데.. 당신이 와서 부딪힌 거잖아요. 날 사랑해서 온 것이 아니었나요?'
'전 그냥 실수로 브레이크를 놓쳐서 미끄러진 것 뿐인데요...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조금은 더 멀찍이,
한 걸음쯤 더 많이 물어서 있어야 한다.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지만, 교통사고가 모두 사랑은 아닌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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