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던 단체사진 속에서 너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어.
그날 그 시간에 너도 그곳에 있었구나!
-나를 처음 본게 언제야?
-그거야 물론 처음 모임 때지.
-그때 말고, 나를 기억하는 때가 언제냐고?
-음... 얼마 안되는데.. 그날 언니 결혼식날 네가 마술 보여줬잖아.
-거봐. 그때가 몇번째 본 건지 알어?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지.
-그럼 너는 언제 나 본거 기억나는데?
-말하고 싶지 않아. 자존심 상해.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먼저 기억하기 시작했다고 자존심이 상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얼마 뒤에 사진들을 뒤져봤지.
우리가 대체 언제 같은 자리에서 만났던가?
음...
아, 맞다.
그날 화평동 왕냉면인가를 먹던날... 아마도 추석 명절때였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발견한 사진보다도 1년이나 더 전이었어. 그때 부천 아인스월드를 구경하고 냉면집으로 월미도로 우리를 안내한 사람이 너였었지.
왜 기억이 안 났을까?
스키장. 아, 스키장에 왔었구나. 맞다. 올라오는 길에는 네가 운전하는 차를 탔었지. 그건 기억이 나는데 왜 스키장에서 같이 논 기억이 없지?
아무튼 그날 정말 열심히 사진들을 뒤졌었는데... 그날은 왜 이 사진 속에 서 있는 너를 발견 못했지?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기억을 해 내봐도
그날 너의 모습은 기억나는게 없어.
우리 말 한마디 하지 않았나?
그날 언니가 청혼을 받았잖아. 그리고 한 달 쯤 뒤에 결혼을 했고....
결혼식장에 네가 처음 등장하던 모습부터 마지막에 내가 택시를 태워 보내던 것까지 모든 것이 기억이 나는데...
하얗던 도화지가 왜 갑자기 꽉 차 버린걸까?
지금 이 사진 속에 너를 발견하고나니 자존심 상한다는 말...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아.
너는 대체 언제부터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고등학교때 정말 예뻐하던 성당 동생 녀석이 있었는데
어느날인가 내가 그 아이 이름을 불렀더니 꾸벅 인사를 하면서
"누나! 드디어 제 이름 외우신 거에요? 정말 고마워요."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하지만 모두를 기억하고 모두에게 관심을 갖는 건 너무 어려워.
잠깐 나의 기억에 들어왔다 나가버린 너.
이제 다시 또 너를 기억할 일은 없겠지?
그런데 나... 앞으로도 여전히 그렇게 누군가를 열심히 기억하며 살지는 않을 것 같아.
왠지 많은 기억은
많은 상처일 것만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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