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오랜만에 연극보다

약간의 거리 2004. 4. 2. 16:34

모처럼만에 연극을 보게 됐다.

더불어 민기오빠도 만나게 됐구.

 

2월 초였나? 대학로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그때 크로스가방을 메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하는 얼굴로 뛰어가던 오빠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로에는 어쩐 일이세요?

-비~밀! 나중에 말해줄께...

 

하고는 사라진 오빠가 연극 준비중이라는 건 예감은 했었지만,

의외로 아주 빨리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알게 됐다.

 

 

사실 모..

오빠가 연극을 한다해도 요즘같은 상황에 굳이 보러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몸도 불편하면서 꼬박꼬박 잊지 않고 챙겨주는 경숙이한테

 

안돼

못 가

시간이 없는데..

 

이런 류의 말들은 꺼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면 나는 늘 OK~! 이다.

뭐 덕분에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건 나지만.

 

 

비가 와서 좀 걱정이 됐다.

일찍 만나기로 했으니 저녁을 먹으려면 내려와야 하는데 경숙이가 휠체어를 타고 어찌 동대의 산길을 내려올까?

할수 없이 나만 다른 친구랑 저녁을 먹고 대신에 샌드위치를 사들고 올라갔다.

 

-경숙! 이게 얼마만이야?

-네 언니~ 너무 오랜만이에요.

-이게 다 당신때문이지. 왜 소집을 안하는 거야?

-그거 제 탓 아니에요.

-어허~ 원래 방장이 다 책임지는 거야.

 

너무 졸립고 피곤한데

경숙이 딴에는 좋은 자리를 준다고 2번째 줄에 정중앙 자리를 줬다.

(참고로 연극보실분들이 있다면 무대서부터 4, 5번째 줄이 가장 좋은 자리랍니다. 목도 안 아프고, 배우랑 눈높이도 잘 맞고, 배우 표정도 리얼하게 보이거든요^^)

 

에구 졸려~

불이 꺼지고 장이 바뀔때면 깜빡 졸구...

 

 

연극은 아주 단순한 주제였는데

배우들이 하나같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좋았다.

출연료도 받지 않고 하는 저예산 연극이라더니,

정말로 연기하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오빠의 어리버리한, 해학스러운 연기가 내내 우리에게 웃음을 줬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는데

오빠는 분장을 다 지우고, 다시 꽃단장까지 하는 건지...

경숙이의 귀가를 책임질 장애인 차를 11에 와 달라고 해 놓은 탓에 더 기다리기가 힘들어졌다.

그녀를 태워보내고는 나도 그냥 언덕길을 내려왔다.

 

-언니, 오빠 안보고 가시려구요?

-응. 그냥 갈래.

-왜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냐~ 오빠 안 만나도 돼.

 

시원스레 쏟아진 봄비에 황사도 씻겨간 모양이다.

공기가 상쾌하고, 시원하다.

하지만 아직 빗물에 씻겨 내리는 꽃향기는 맡을 수가 없었다.

 

 

경숙이 성화에 마지막 공연을 다시 보기로 했는데...

그때는 또 모두들 어떤 연기를 담아내 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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