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의 한별이는
막내의 배가 점점 커지는 것에 호기심을 가졌다.
어느날 우리는 그 비밀을 들려주었다.
- 언니 뱃속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어. 나중에 아기가 나오면 잘 해 주어야 한다.
믿어지지 않는 표정의 한별이.
그 비밀을 알려준 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그날 이후 한별이는 동생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동생이 있으면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 했고,
나하고 재밌게 놀다가도 동생이 나타나면 입을 꽉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 괜찮아. 언니는 그래도 화 안내.
이렇게 참고 또 참던 동생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할 즈음에 아기가 태어났다.
- 한별아~ 이제 언니 배 쏙 들어갔지? 아기가 이렇게 나오니까 언니가 다시 날씬해 진거야.
이번에도 믿어지지 않는 표정의 한별이.
그러나 그날 이후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한별이가 동생에게 말을 하기 시작한 거다.
더 놀라운 건 결혼하고 한번도 한별이의 목소릴 들어보지 못한 제부에게
-형부 피자 사 갖고 금방 올께요.
하며 이야기를 한 거다.
한별이는 아기를 정말로 예뻐한다.
이틀동안 아기를 보고 돌아간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귀여운 아기를 보러 가자고 했단다.
- 한별아, 엄마가 이뻐? 아니면 언니가 이뻐?
- 음... 엄마 이쁘고, 언니도 이뻐.
하던 녀석이
- 엄마가 이뻐? 아기가 이뻐?
하면,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아기
라고 대답한다.
- 한별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뻐?
- 엄마랑, 이쁜 언니랑, 아기랑, 막내 언니.
(여기서 이쁜언니는 저라구요... 오랜 세뇌교육의 결과인데, 문제는 이제 이름을 알려줘도 외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쁜'이 곧 저의 이름인 거죠^^)
한별이는 단박에 막내의 이름도 외워버렸다.
물론 아직 제부에게는 '아기아빠'라는 호칭을 쓰고 있지만 말이다.
그림도 그린다.
배가 풍선 같이 생긴 막내 언니를 그리고,
다시 날씬한 막내 언니를 그리고,
다리가 짧은 아기를 그린다.
아기는 작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설명을 한다.
"언니 배가 들어가면서 아주아주 귀여운 아가가 나왔어"
(한별이가 그린 그림을 흉내낸 것임. 아기는 다리가 짧다.ㅋㅋㅋ
사람 몸통을 저렇게도 그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제는 종일
-이쁜 언니~ 움직이는 아기 보고 싶어
하는 한별이 때문에 괴로왔지만...
한글이라고는 고작 '이한별'과 '눈'만 쓸 줄 아는 녀석이 지난 2주 사이에
'아기'와 '아가방' 을 배워온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기의 힘은 정말 감탄스러운 따름이다.
그날 이후 한결 밝아지고, 목소리도 커지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너그러워진 한별이를 보고 있으면
'아기'라는 천사가 이뤄낸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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