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 사람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훈훈해진다면야 좋겠지만
늘 문제는 그놈의 기다림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에 생기는 법이다.
생각해 보라~
종종 지각을 하던 사람들.
교문을 지키고 서 있는 선도부 선생님의 매서운 눈초리를 떠올리며 불안해했던 기억
귀가가 늦은 날 부모님의 불호령을 생각하며 내내 조마조마 했던 기억
연인사이에서도 그렇다.
약속시간은 벌써 지나 애인은 화나 있고 차안에서 발 동동 굴러봐야 가슴만 쿵쾅거릴 뿐이다.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의 역할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기다리는 사람은 불안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우리 아빠는 늘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엄마는 늘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다.
아픈 아빠가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거라서 딱히 약속 시간이라는 게 없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란 건
기다리는 아빠에게는 한없이 지루하고 길며,
엄마는 더 서둘러야 할 것만 같아 언제나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것이다.
모두가 기쁜 성탄절...
결국 그 ‘기다림’ 때문에 우리 집에 쬐금 높은 폭풍이 일었으니...
문제는 엊그제 이사한 동생의 집을 보러 잠시 다녀오겠다며 12시에 나간 엄마가 저녁7시까지 돌아오지 않으면서 시작이 됐다.
엄마의 외출로 인한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중차대한(?) 일정을 미루고 2시에 귀가한 나.
뭐... 별다른 문제없이 조용한 성탄절 오후 시간이 흘렀다.
오후 5시.
“언니는 어디 갔냐?”
“시댁이요.”
오후 6시.
“니 엄마는 왜 안오냐.. 전화는 왔었냐?”
“아뇨.”
사실 5시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엄마가 동생집 근처에 사는 직장 동료들과 잠시 나갔다고...
모처럼만의 외출이니 조금 기다리다가 자기가 2시간 안에는 함께 집으로 오마고...
아빠의 기다리는 마음을 알지만
뜻밖의 외출에 자유로울 엄마의 맘을 알기에
전화해 보라는 무언의 압력은 뒤로하고 있었다.
6시30분.
“엄마 전화도 없었냐?”
“네.. 아빠 방에 불 켜드릴까요?”
잠시 고민
“됐다.”
아빠는 식구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방안에 홀로 있는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에게 시위를 하고 싶었던 거다.
잠시 후 방안에서 아빠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내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아빠 뭐 좀 드렸어?”
“아니.”
“빵이라도 한쪽 드리지.”
“안 드셔. 방에 불도 안 켰는데 뭘.”
“왜~ 얼른 불 켜 드려”
“싫대”
“불 켜 드려!!!”
“아빠. 불 켤까요?”
“거의 다 왔다는데. 그냥 둬”
역시, 아빠가 시위하려는 게 맞다.
“안 돼요. 엄마가 전화해서는 아빠 불도 안 켜 드렸다고 저한테 화내셨단 말이에요. 저 혼나요~~ 불 켤까요?”
잠시 생각
“그래.. 그럼 켜”
여기서 아빠의 섭섭함은 조금 달래졌다.
저녁시간이 되어도 아무 연락 없이 나가있는 사람.
혹시 집안에 누워있는 내 존재는 아예 잊고 있는 거 아냐?
이런 섭섭함 따위는 관심을 확인하는 그 순간 바로 사라지는 것이다.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
아빠는 고개를 벽으로 돌리고 돌아눕는다.
삐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츄어일 뿐이다.
요란하게 들어선 엄마.
“집을 아주 잘 샀더라구. 사람들이 다 어떻게 이런 집을 샀냐고... 어쩌구 어쩌구..... 그래서 기분 좋은데 당신은 왜 삐지고 그래”
하시더니 휙~ 나가버린다.
“아빠~ 그거랑 지금 엄마가 늦게 온 거랑은 별개죠... 괜히 미안하니깐 딴 소리만 하시네”
“응. 맞어.”
분주히 아빠의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
“넌 밥 먹었어?”
“아니”
"왜 안 먹었어?“
“왜 먹어? 00이 와서 같이 파티하기로 했는데”
엄마의 궁시렁.....
짜증나 죽겠어. 집에 오면 온통 다 내 일거리고 어쩌구......
“왜 화내. 내가 엄마와서 저녁 챙겨 달라고 안 먹은 것도 아니고, 그럼 동생이랑 크리스마스 파티하기로 했는데 혼자 청승맞게 저녁 먹는 게 이상한 거지”
“그게 왜 청승 맞은 거야?”
“청승 맞은 거지 그럼. 잘 놀고 와서 미안하면 그냥 미안한 거지 왜 가만있는 사람한테 성질을 내. 나까지 기분 나쁘게”
순간 온 집안 공기가 싸~~ 해 졌다.
사람들은 종종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뭐 낀 놈이 성낸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엄마는 끝까지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냐고... 나 역시
"당연히 미안하지~ 미안한 거 다 아니까 괜히 화 내지마” 하고 끝까지 우겼다.
결국 우리의 ‘미안해 안 미안해’ 논쟁은 저녁 식사를 먹으면서 끝이 났다.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고, 아무도 화난 사람이 없었는데도 일었던 이유 있는 폭풍은 그렇게 30여분만에 가라앉았고, 한밤에 도착한 언니는 자기가 있었으면 사전 진화가 됐었을 문제라며 으스댔다.
그리곤 모두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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