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 “몇십년 만의 약속” 이라는 제목으로 2,30년 만에 초등학교(?) 교실에서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훈훈한 소식으로 신문 사회면에 소개 되는 걸 보곤 한다.
10년, 20년, 혹은 30년.
오랜 세월 후에 만나자던
약속의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아오이가 말했던 것처럼 너무 유치한 약속이라서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아오이와 쥰세이의 경우처럼 결코 잊을 수 없는 약속이라서 하루도 그 약속을 잊지 못하고 지냈지만… 차마 그 자리에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학창 시절 어느 땐가 그런 약속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이런 약속을 어떻게 잊겠어.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나 혼자만이라도 나와 있을 거야’
그렇게 다짐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약속을 언제 했는지 조차도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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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
골목
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자전거를 고치고 있던 쥰세이를 넋 놓고 바라보면서도 차마 부르지 못하던 네가
파티장으로 널 만나러 온 쥰세이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띄어주었을 때,
그때
난 이미 알아버렸는 걸.
넌 내내 그랬어.
바보 같은 쥰세이는 한번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오이 너에게
먼저 말을 걸어 온 사람은 쥰세이였고,
먼저 떠난 사람도 쥰세이였지.
그리고 다시
널 찾아 온 사람도 쥰세이였어.
- 물론 지난 10년 동안 쥰세이의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널 찾아낸 건 쥰세이 자신이었고, 떠난 사람이
아오이 너였을 테지만.
쥰세이가 그랬어.
넌 늘 혼자였다고.
너처럼 혼자 지내는 걸 즐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넌 누구보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고.
쥰세이는
그것밖에 몰랐지.
그래서 쥰세이는 그런 유치한 약속을 누가 기억하겠느냐고 네가 말했을 때 화를 냈던 거고,
처음 널 보낼
때도,
다시 네가 LA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도
잡지 않았던 거겠지.
세상에,
스스로도 유치하다고 말하는 약속을
지키려고 LA에서 피렌체까지 날아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게 날아왔다면 그건 그 사람한테도 잊지 못할 약속이었다는 뜻이
아니겠어.
쥰세이는 곡명이 기억 나지 않는 다던 첼로 연주.
그 연주가 그날 그 장소에서 열린다는 걸 알고 손잡아 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곡명을 잊어버린 사람보다는 조금 더 많이
그 추억의 끝자락을 잡고 살았단 거
아닐까.
아오이!
밀라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울고 있는 너를 보다가
지난 주말에 본 어떤 여자가
생각났어.
비가 오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시청 앞에서 길거리 안내판 뒤에 우산도 쓰지 않고 숨어 앉아 울고 있었어.
한
50M쯤 떨어진 곳에는 어떤 남자가 꼼짝도 앉고 서 있었어.
한참 만에 그 남자가 와서는 여자를 데리고 갔지.
아오이도
비속의 그 여자도
사랑을 숨겨둔 채 절대 먼저 손 내밀지 않았어.
그런데 왠지 나도
그렇게 냉정 속에 열정을 감추고
살아갈 것만 같아.
*** 영화는 쥰세이의 나레이션으로 흘러가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만 아오이의 나레이션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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