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온다는 건,
비가 많이 온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폭풍우가 오기도 하므로 튼튼한 우산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발장 가장 아래 서랍은 우리집 우산들이 모이는 장소다.
아빠의 커다란 장우산을 제외하곤 집안의 우산들은 그곳에 잠들어 있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우산부터, 너무 더러워져서 아무도 꺼내들지 않는 우산까지...
서랍 속에서 우산들은 평등하다.
우리집에 방문했다가 예기치 않게 비를 만난 사람들은 그곳에서 우산을 선택해 쓰고 간다.
사람들이 가져간 우산은 거의 100%, 아니 99%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엄마가 나는 싫다.
특히나 그들이 선택하는 우산은 대부분 내꺼기 때문이다. - 왜냐면, 내것이 가장 이쁘니까!!
결국 나는 반기를 들고 내 우산들을 독립시켰다.
작은 바구니를 마련해서 내 우산들은 그곳에 담아 내방 책상 아래 놓아 두었다.
바구니가 꽉 차게 우산이 있었고, 하나는 늘 가방안에
또 하나는 사무실 서랍에....
이렇게 내 우산들은 분산되어 있었다.
하늘색, 연두색, 분홍색, 체크무늬, 카키색, 빨간색, 그리고 짙은 남색에 검은색까지....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날,
책상 아래 우산 바구니가 텅~ 비어 있었다.
회사 서랍에 넣어두었던 예비용 우산도 사라졌다.
나는 마음이 허전했다.
매일같이 우산 타령을 했다.
"내 우산 어디 갔어?"
"나 왜 이렇게 우산이 없지?"
결국 OO마트에 간 어느날 엄마는 우산 코너로 나를 데려 갔다.
"우산 하나 사"
"음..... 됐어."
"왜? 너 맨날 우산 타령이잖아."
"아냐. 됐어."
"사~~"
"음... 사실은..... 아까 벌써 와서 봤는데 이쁜게 없어."
"이건? 이건?"
으휴~~~ 엄마가 집어드는 우산은 하나같이 초등학생용 피카츄다!
더구나 피카츄 유행 지난게 언젠데?
그리고 얼마후 대학로에서 갈색나는 테디베어 우산을 사고야 말았다.
엄마 몰래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역시나, 비밀은 없는 법.
곧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엊그제.
몇달째 눈에 담에 두었던 보라색과 분홍색의 중간 색? 흐린 팥죽색?
아무튼 내가 알고 있는 색 이름으로는 분류시킬 수 없는 색깔의 우산을 샀다.
그리고 매일 그 우산을 듣고 다닌다.
어제도 오늘도 비가 왔지만 아직 쓸 기회가 없었다.
이상하게 비가 안 올때만 나가게 된다.
오늘은 종일 날씨가 꾸물꾸물.... 비가 올랑말랑....
혹시나, 하는 맘에 점심 때 우산을 들고 나갔지만
역시나, 비는 오지 않는다.
그런데 왠일?
우산이 없다.
드디어 내가 늙었나보다.
깜박증이 아무리 심해도 여지껏 우산을 잃어버려 본 적은 없는데,
식당에서 두고 왔나? 어쩐지 그집 명함을 들고 나오고 싶더라니.... 근무시간에 다시 다녀오기엔 너무 멀다.
퇴근하고 가보면 그대로 있을라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식사 후에 들른 마트에 두고 온 것도 같다.
계산대 위에 두었다면 다음 손님이 집어 갔을지도 모르는데.....
아~~~~~~~ 오후 내내 일이 안 된다.
아까운 내 우산.... 내 우산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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