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행복하지 않을 때 걸리는 병

약간의 거리 2003. 7. 19. 12:45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큰 병에 걸림으로써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내용이 종종 나옵니다.
물론 주인공은 그간의 삶이 착하던, 착하지 않았던 나름대로 열심히, 엄청 고생을 하며 살아왔고,
이제 어떤 계기로 인해서 착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여유가 생긴 다음이 대부분 이죠.

어쨌거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된 우리의 주인공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삶의 마무리를 준비해 나가죠.


얼마전에도 그런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제 동생이 느닷없이 묻더군요.
-언니, 언니도 저 상황이면 식구들한테 말 안 할거야?
-응. 안하는게 아니라 못할 것 같은데....
-저봐요~~~ 빨리 말을 해야지. 그럼 혼자 죽은 다음에 그 사실 알면 남은 사람들 맘이 어떻겠어? 꼭 말해! 죽던 살던 알아야 할 거 아냐.


근데 참 이상하죠?
저도 제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몹쓸 병을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면 밉고 분하고, -결국엔 측은하고 미안하겠지만...- 할텐데....
그 당사자가 저라면 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에게도 정말 그런 일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신체검사를 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하면서 CT촬영까지 하게됐거든요.

열흘 남짓한 기간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전 아직 확실한 진단이 나온게 아니라서 누구에게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정말 그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더라구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
지금 다시 생각하니 좀 유치한 것 같네요.


아무튼 미워하는 사람을 남기지 말자!
그런 삶의 모토가 생겨나기도 하구요,

생전 연락 안 했던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안부 전화를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물론 진짜로 하진 못했구요.

제 전화를 받고선
-어쩐 일이야? 우울해?
이렇게 물어봐 주는 사람과는 무슨 텔레파시라도 통한 건 아닌가.... 아는 황당한 생각까지.


결과가 나오고 건강해지고 나니
맘 속에 품었던 오만가지 생각들이 어찌나 황당스럽게만 느껴지는지.....

괜히 머쓱해지네요.



참, 제가 걸릴(?) 뻔한 병에 대해 조사하다보니

행복하지 않을 때에도 그 병에 걸린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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