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가끔 도둑이 든다.
현관 안까지 도둑이 들었던 적은 한 번 있다.
별로 가져갈 물건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가 일년이면 두 번, 명절 때마다 배를 따는 돼지저금통을 빼 놓고는 없어진 게 없다.
그런데 문제는 대문 안에서 현관문안까지 드나드는 도둑이다.
아주 사소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물건들을 집어가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대문이 없다.
아니 있기는 있다.
하지만 환자가 혼자 열고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의 집에 있는 그런 번듯한 대문이 아니다. 당연히 잠기지 않는다.
그나마 닫혀 있는 시간도 별로 없다.
예전엔 아예 닫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 도둑 때문에 닫기는 한다.
그래야 열리는 소리라도 난다는 엄마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다.
도둑이 가져가는 물건은 이런 것들이다.
1. 모아놓은 폐휴지. - 이건 내가 정말 가기 싫어하는 보일러실 깊숙이 있는데 어떻게 그걸 갖고 가는지 모르겠다.
난 우리 집에 가스폭발 사고가 일어날 뻔한 위험한 일이 생긴 이후로 보일러실에 가는 게 정말 싫다.
그리고 그곳은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날이 되면 고양이의 아지트가 되기 때문에 더더욱 싫다.
2. 분리해 놓은 병.
사실 모 이 두 가지는 양호한 거다.
엄마가 폐휴지를 모아 드리는 분이 있어서 모으기는 하지만 누구라도 가져가서 그게 유용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서......
현관문 앞까지 드나드는 게 기분 나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가 크게 마음 상했던 건 세 번이다.
첫 번째 사건은 지난 여름이다.
엄마가 화분에 키우던 부추를 누군가 잘라간 거다.
부추는 원래 자꾸 자르는 거라고 한다.
잘라서 먹어도 또 금방 자란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상심했던 마음도 부추가 자라면서 덮였다.
두 번째 사건은 지난 2월이던가? 엄마가 장을 담그던 때였다.
간장을 담글 때는 숯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 tv와 내방 컴퓨터 위에서는 전자파 차단까지 해 준다는 숯이 옹기그릇에 담겨 놓여 있다. 나는 시중에서 파는 숯은 모두 그렇게 적당한 크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가 장을 담그기 위해 사온 숯은 그런 아담 사이즈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열심히 톱질을 해서 숯을 모두 잘라두셨다.
요즘 톱질하는 집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우리집은 왠만한 공부는 다 있다. 그래도 톱은 줄톱이다. 그래서 숯을 모두 토막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엄마는 숯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검은 비닐 봉다리에 담에 항아리 사이에 놓아두셨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걸 분리해둔 병과 함께 집어가 버렸다.
손에 물집 잡히며 잘라 놓은 숯 봉다리를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은 바로 이틀 전에 벌어졌다.
우리 엄마는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 구조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베란다가 없다는 거다. 대신에 집 구석구석이 베란다는 대신한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내방 창틀이다.
동향인 데다가 적절한 습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난이 꽃을 피운다.
덕분에 난 한겨울 내내 추위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난 화분들 때문에 창문이 닫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겨울도 난 역시 추위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솜이불은 덮지 않는다. 옷이고 이불이고 무거운 건 질색이다.
“엄마, 나 너무 추워”
“그래... 안 그래도 니 이불 하나 사려고 했어”
“이불은 왜?”
“추우니까 하나 더 덮으라고.”
“무거워. 나 깔려 죽으라고?”
“이불에 깔려 죽었다는 사람 못 봤다.”
“난 싫어.”
“그래도 어떻게 해? 빨리 이불을 하나 사야겠다.”
“엄마, 꼭 그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럼 무슨 방법?”
“창문을 닫을 수도 있어.”
“........”
엄마는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불을 사주겠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지난겨울 난 그 추위에 용케도 무사했다.
그리고 난이 꽃을 피우자 엄마는 온갖 생색을 내며 이야기했다.
“엄마가 널 제일 사랑해서 예쁜 꽃 보라고 네 방에서 난화분을 키우는 거야.
봐! 얼마나 예쁘냐? 우리 집에서 니방이 제일 좋다, 나는.”
아무튼.......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나무들 중에 예쁜 꽃을 피운 나무를 -나무 이름은 모른다- 누군가가 뽑아간 거다.
‘그거 지금 옮겨 심으면 살기 힘들텐데....’
“엄마, 그래서 속상해?”
“속상하긴... 꽃이 예쁘면 그냥 보면 되지......”
며칠 전,
“내일 비 와?”
“응. 엄마. 밤에 조금 온대.”
나는 외출하는 엄마가 우산 챙기려고 물어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 그럼 물주길 잘 했네.”
이러던 엄마의 모습이 스쳐갔다.
이번엔 나도 용서할 수가 없다.
마음 같아선 당장 현관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싶지만 우선은 경고문을 써 붙이기로 했다.
경고
저희 집을 드나드는 분이 있습니다.
변변찮지만 엄연히 대문이 있는데 현관까지 와서 물건을 집어 가시네요.
힘들게 톱질 해 놓은 숯,
분리해 모아놓은 병들.
지난 여름 베어간 부추는 맛있게 드셨나요?
이번엔 꽃나무를 뽑아가셨군요. 꽃이 예쁘면 두고 보면 되지. 아니면 주인에게 말을 하던가.
가택무단침입에 절도행위입니다..........
그런데 너무 길어서 사람들이 안 읽을 것 같다.
짧게 다시 써야지.
분실물
숯, 병, 꽃나무
남의 집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맙시다!
이것도 좀 그렇다.
에이, 엄마한테 우리도 대문 잠기는 걸로 다시 만들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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