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폐결핵을 알았던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전화로 그 얘기를 들었다.
상대는 병원에 가서 정확하게 검진을 받아 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길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다. 거의 통곡에 가까웠을까?
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가지 또렷한 기억은,
두려웠다는 거다.
아직까지 드라마에서 종종 비를 흠뻑 맞은 여주인공이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두려움의 이유가 '죽음'은 아니었다.
폐결핵은 전염병이다.
이제 식구들이 나와는 같은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하려 하지 않을 거고,
같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걸 꺼려하겠지.
아니, 어쩌면 식구들과 한 집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 나 병원에 가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거야?"
아마도 그렇게 물어봤던 것 같다.
전염병에 걸린 나는 그렇게 세상속에서 격리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 거였다.
익숙한 것들,
내가 아는 것들에서 떨궈진다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몇년 전, 어학연수를 다녀오겠다며 사라진 친구가 있다.
5년여동안 붙어다니던 삼총사 중 한명이다.
어학연수를 떠났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이듬해던가, 대천에서 그 친구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후에 우리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 친구가 왜 잠적했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을 알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도망쳐야할 일이 그녀에게 있었던 걸까?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멀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은 없었을까?
참 미워했던 친구였다. 나랑은 여러가지로 마음이 맞질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계절이 바뀔때면 생각이 나고,
비오는 수요일이 되면 그립다.
"비와. 수요일이네.... 그럼 학교올때 꽃 사오는 거 알지?"
싫으면 두번다시 돌아보지 않던 내가,
유일하게 미워하면서도 곁에서 맴돌던 녀석이었다.
어디선가 잘 살고는 있는 거겠지.
"아무튼, 다시 만나는 그날 몸 성치 못 할 거다,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