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내가 정말 친했나 보다.
내가 그와 연락을 끊은 지 정말 오래되었나 보다.
어느 유행가 가사 였더라~~~
헤어진 그녀의 소식을 자꾸만 물어서 괴롭게 만드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흔한 사랑노래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랫말이던가?
아무튼 요즘 그 유행가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 못 만난 그 보다 더 오래 연락이 끊겨있던 그와 내 주변의 사람들.
요즘 그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리고 그네들의 공통된 첫 인사말은,
“그 사람 울산으로 발령 났어. 알아?”
알고 있다.
한달쯤 전엔가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산으로 가게 됐다고.
그러냐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았다.
왜 가게 됐는지,
가면 어디서 사는 건지,
언제 돌아 올 건지,
그 밖의 그의 주변에 관한 이러저러한 것들.......
아니다,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져서 무엇 하려고.
그와 나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삶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렇게 멀어져서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서로에게 작은 따뜻한 감정을 갖고 있을 수 있는지 모른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참 오랫동안 우울했다.
그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던 걸까?
그는 못 만난 시간을 다 더해서 떠나기 전 두 번은 만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울산이다.
그가 마지막 방송을 하던 날 짧은 통화를 했을 뿐이다.
보고 싶지만 만나는 게 두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만나지 못하고 떠난 게 섭섭하지만 동시에 안도가 된다.
어쩌면 나는 가장 사랑하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죄를 받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결코 가까워 질 수 없게...
나는 그런 죄를 받고 태어났다 치자. 하지만 상대는 뭔가?
점심을 먹고 들어왔는데 그에게서 짧은 메일이 왔다.
보낸이에서 그의 이름 앞 자만 보고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울산.
교회 사택에 머문다고 했다.
그런데 덕분에 새벽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새벽예배 때문에 목사가 되기를 포기한 그다.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이 된다.
사무실도 마련되지 않은, 연고 하나 없는 타지에서 대낮에 피씨방이나 드나들어야 할 만큼 지금 그는 막막한 상황인 건가?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다.
그는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의 나는 정말이지 행복했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오직 그를 만난다는 설레임 만이 있었다.
그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거닐고 버스를 타고 함께 사람들 만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지났다.
그는 너무나 자유로운, 그래서 결코 한 곳에 매어둘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두려운 세상 속에서 그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기에 결코 그를 바람처럼 떠돌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을 사랑했지만
내 곁에서 조차 자유로운 그의 모습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바람으로,
나는 바람속에 묻혀가는 그를 가끔씩 느끼며 행복해 하는 사람으로,
그와 나는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아, 이제 그를 떠난 나의 방황도 접힐 때가 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