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새해 첫날 -눈을 맞으며 하는 생각들

약간의 거리 2001. 1. 1. 23:57
내내 집에 있는 게 싫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거리고 나섰습니다.
무조건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는데,
찾아간 극장에선 보고 싶은 영화도 안하고,
대형 서점은 모두 문을 닫고.....

할 수 없이 이대 앞으로 왔죠. 미리 확인해 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 싫어하는 것에 맞서 싸우고, 그것을 부수려고 할때는 결국 이길 수 없다는 것.
지금 내가 작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그 상처를 감내하며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 ---
예전같으면 콧방귀 꼈을 법한, 동화속 권선징악 같은 얘기지만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와,
그 회사에서 부딪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느껴지는 게 많은 영화 였지요.

형선이에게 줄 선물 -머리핀-을 사고,
형주에게 줄 선물 -다이어리-
그리고 둘 모두에게 줄 색연필-난 형광펜보다 색연필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을 샀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친구를 만나러 갔지요. 눈이 오기 시작하는 저녁거리를 걸으며......
처음엔 듬성듬성 내리는 눈 사이로 피해 갈 수도 있겠다! 싶은 만큼 내리더니 점점 많아졌어요.

눈을 맞으며 걷다가 선물가게 앞을 지나가게 됐는데,
그 가게 앞에서 발을 멈추고 하는 생각이
"우산을 사야 되나?"
가게앞에 쌓인 우산을 한참 보다가 그냥 자리를 떳죠.

버스정류장 앞에 서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두번째 하게 된 생각
"집에 갈때는 지하철 타야 겠다."

친구랑 헤어지면서 세번째로 한 생각
"내일 아침은 일찍 나와야 겠다. 길이 얼어서 많이 밀리겠는 걸."

원래두 눈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생각하는 나를 볼때마다 참 우울합니다.


집 앞 신호등에 섰는데
갑자기 꽁꽁 얼어붙은 눈을 파내고 싶은 생각이 들대요.
왼발, 오른발
번갈에 가며 눈을 파내다 보니
구두코에 달라붙은 눈이 신기해 또 파내고,
그것두 장난이랍시고 하다보니 괜시리 맘이 가뿐해지고 즐거워지대요.

골목 앞에서 눈 뭉치며 노는 꼬마여자아이는 손시렵지 않냐는 할아버지 물음에 괜찮다고 합니다.

이제는 조금 전에 눈위에서 미끄럼타며 가던 그 여자아이도 밉지가 않습니다.
빙판길 만들며 가던 그녀가 아까 까지는 몹시도 미웠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