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들은 아저씨의 동생 얘기.
녹음을 하면서 맥주를 두어잔 드신 날 밤이었다.
그날 버스를 타러 걸어나오면서 아저씨는
빌 에반스와 째즈스토리, 그리고 꽃밭에서.... 의 주인공 얘길 들려주셨다.
얘기를 마치시고는 쑥쑤러운듯이
"너랑 정말 많이 친해졌나보다. 이런 얘길 다 하고" 하셨다.
동생은 그냥 동생이 아니었다.
아저씨의 고향이었고, 잊고 싶은? 글쎄, 아무튼 쉽게 꺼내놓고 싶지 않은 아저씨의 어린시절이었다.
두어주 전쯤이었다.
방송이 덜 끝났는데 일찍 나가봐야 한다는 아저씨는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몹시 미안해 하셨다.
방송 마치기 전에 나가는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면서 말이다.
나중에 살짝 동생이 집을 계약하는데 함께 가 주어야 한다는 얘길 하셨다.
'그래서 나한테 미안해 하셨구나! 순진하긴.'
밤늦에 다시 돌아오신 아저씨 얼굴이 참 슬퍼보인다.
이루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둔 옛사랑을 만나면 저렇게 슬픈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애틋한 사랑을 만나서는 다음날 섭외한 사람 펑크났다는 얘길 하려고 나에게 열번도 넘는 전화를 했다니....
그날따라 내 전화는 왜 안돼서 남의 사랑을 방해했을까? 눈치도 없는 전화같으니라구.
지금 아저씨 동생은 병원에 있다.
어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오늘 병문안을 가겠다고 눈길을 헤치며 달려간 아저씨는 기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오셨다.
끌린 구두끈을 고쳐매는 아저씨게 말을 건다.
"아저씨! 지금 누구 짝사랑하죠?"
"응"
"그럴 줄은 알았지만 어쩜 그렇게 서슴없이 대답을 하냐?"
"어떻게 알았어?"
"왼쪽 구두끈이 풀리면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거고, 오른쪽이 풀리면 누군가가 짝사랑하는 거래요."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면서도 아저씨는 문득문득 혼잣말을 중얼거리신다.
'그래도 전화는 받더라. 수술이 잘 됐나봐.'
아저씨를 보면서 생각을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게 두고두고 맘쓰이게 하지 말아야지.
먼훗날 만나고 돌아서서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짓게 하지는 말아야지.
동생이 싫어한다며 늘 신던 구두 벗어놓고 새구두 신고 나섰던 아저씨는
바닥도 미끄러운 구두 신고 집에는 잘 들어가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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