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반지를 안 끼셨네요.
여: 아... 네....
남: 여자들은 반지 좋아하지 않나요? 여러개씩 끼던데....
여: 글쎄요... 끼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그냥 까먹고 나올때도 있고... 그래요.
남: 그럼 오늘은 끼고 싶지 않은 날이었나요?
여: 아니,.. 그게 아니고...
남: 그럼 깜빡 하신 거에요?
여자는 문득, '내가 왜 이 남자에게 이런 설명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
여자는 반지를 좋아했다.
악세서리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반지만은 항상 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 졸업기념으로 엄마가 해 준 반지를 꼈다. 특이하게 벨트 모양으로 생겼고, 빨간색 루비가 박혀 누구나 탐을 내던 반지였다.
그 후에는 언니가 결혼할 때 형부가 해 준 까만색 어닉스가 박힌 중성적인 느낌의 깔끔하고 예쁜 반지를 꼈다.
중간 중간 계절에 따라 시원한 파란색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달린 반지를 낀다거나, 겨울이면 보송보송 털이 달린 반지를, 물방울 진주 같은 느낌의 구슬이 많이 달려 아주 화려해 보이는 반지를 끼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친구가 사 준 반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여자는 볼품없는 싸구려 링반지를 끼고 다녔다. 다른 반지들의 화려함에 그 반지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게 싫어서, 그 반지를 낀 이후로 다른 반지들은 모두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다.
"반지를 안
끼셨네요."
남자의 말은 여자의 귓속에 메아리 처럼 울리면서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는 흐릿한 기억의 강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자의 기억의 방을 두드린 것이다.
반지.....
이제는 끼거나 끼지 않거나, 그런 일은 여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몹시도 기분이 좋은 날, 의상에 맞춰 코디를 하고 싶은 바람이 어딘가에서 불어오지 않는 이상, '반지'가 손가락에 끼워지는 물건이라는 것조차 여자에게는 잊혀져 있는 일이었다.
아직도 남자는 반지를 끼지 않는 이유를 집요하게 묻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 저 남자는 데이트에 실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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