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극장전 - 일상의 발견

약간의 거리 2005. 6. 1. 10:21

 

너무나도 심심한 날. 무료함을 달래보려고 더욱 심심한 영화를 찾아 극장에 갔다.

 

영화를 보기 전, 극장前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나에게 올해 여름이 어떻게 왔는지를 친구에게 들려줬다.

 

 

우리집 앞 골목끄트머리에 있는 집에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게 잎이 무성해 지면 골목까지 가지가 뻗어 나오지.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가는데 골목으로 늘어진, 잎이 무성한 그 나뭇가지에 초파리떼가 윙윙거리는 거야. 사람이 걸어가는데 너무 많아서 어쩔수없이 얼굴이 와서 부딛히는..... 으~~~~~~~
그래서 난 여름이 온 걸 알았어.
너무 지저분하지 않니?

누군가는 말이지, 어떤 남자랑 팥빙수를 먹는데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해줬대.
"올해의 첫번째 팥빙수를 너와 먹는다"고...
그래서 <올해의 첫 팥빙수>라는 말 때문에 여름이라는 걸 알게 됐대.



나두 그렇게 멋있게 계절이 바뀌는 걸 느끼고 싶다!!
그런 날이었다, 어제는.
계절이 오고 가는 걸 멋있게 알아채고 싶은 날....

 


 

영화 시작 5분전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        

극장 안에 창이 있다. 

그리고 창밖에 장독대가 있다. 

어느 집 담장과 장독대의 항아리들을 넘어 햇빛이 극장 안으로 쏟아 져 들어온다. 

 

당신은 이런 극장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극장안은 조용했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음악도, 광고도, 예고편도 흐르지 않는 깨끗한 스크린에는 오로지 스러져가는 저녁 햇빛만이 반짝이고 있다. 

 

 

 




"극장전"은 한마디로 "생활의 발견"이다. - 나는 홍상수의 전작 생활의발견은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생활의 발견이라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이다 -


영화는 영화속의 하루와 영화밖의 하루를 단조롭게 보여준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간의 특이함, 내 주변의 누군가, 혹은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는 '미운놈'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외박전화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여자와 그 여자보다 더 자연스레 보일려고 노력하며 전화하는 남자.

그래 놓고선 "넌 집에 가고 싶으면 가"라고 말하는 여자.

 

하기 싫은 일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기다리는거 별로지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만나보니 또 나쁘지 않고.

 

함께하고 싶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왠지 거절하면 안될것 같아서 동행했는데 막상 가보니 냉랭, 머쓱~ 마땅히 거절했어야 할 자리에 눈치없이 껴 앉은 꼴이 되어있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쩜 그렇게도 생활의 발견이다.

그래서 웃기지 않는 장면인데도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키득키득,

큭큭큭,


 

마지막에 동수의 말,

생각을 해야지. 그래 이제 좀 생각을 해야지.....

이거 내가 정말 잘 쓰는 말이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제 그런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이제 생각보다는 행동을 해야지 !

 

어쩌면 동수도 그가 본 영화에서 이렇게 나처럼 생활의 발견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취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의 크리스마스_ 정원의 편지  (0) 2005.06.10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0) 2005.06.09
오페라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0) 2005.05.06
머시니스트  (0) 2005.04.15
달콤한 인생  (0) 2005.04.12